폭풍이 지나가니 가을이 깊어집니다. 몇 번의 비바람에도 곡식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태풍이 지나갔지만 가을 들녘은 늘 황금빛으로 채워지곤 했지요. 저는 그것이 경이로웠습니다. 인간이 아는 게 뭐가 있나 싶기도 했고요. 연꽃은 연자씨가 되어 이미 수확을 끝냈고, 연잎은 낙엽이 되어 부서지니 가을 정취가 제법입니다.
시골의 가을은 몸만 움직이면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주워와서 나눠주는 것만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구마 밭도 즐비합니다. 밭 주인은 고구마 이삭을 남기더군요. 은행이며 모과며 감은 너무 흔하다 보니 오히려 먹을 마음이 안생기네요. 그냥 가을 풍경이죠. 봄나물 캐던 언덕길에는 대추가 익어가고, 달디 단 것은 항상 벌레가 먼저 먹습니다. 호박은 아무렇게나 자라지만 심은 자가 아니면 가져가지 않습니다. 괜히 수세미와 조롱박을 많이 심은 아낙은 누구를 나눠주나 생각이 많습니다.
신록이 지나가면 이처럼 가을이 오고 1년은 어느 계절도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나는 질문을 합니다. 가을은 풍요롭고 아름답기만 한데, 사람의 노후는 어째서 허기지고 초라한 것일까.
청춘도 중년도 다 지나고 60이 되면서 좀 엉거주춤했습니다. 60을 노인이라 해서 죄송스럽습니다만 사실이기도 하니 용서 바랍니다. 여하튼 이만큼 살았으니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막상 까놓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딱히 나잇값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젊은 날의 많은 문제들이 시원하게 풀린 것도 아니었지요. 세월이 흐른다고 연륜이 그냥 쌓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러다 후딱 죽을 날이 오면 그 후회와 회한을 어떻게 하나 두려웠습니다. 10년 세월이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을 익히 경험하였으니까요.
저의 모친은 자식과 다투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모친은 평생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부모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도록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내몰리며 살다가 대책 없이 늙어갔습니다. 모친은 70이 넘어서 그렇게 원하던 혼자 만의 공간과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노후를 위해 준비한 것은 돈 뿐이었습니다. 심리적 보루일 뿐 마지막까지 쓰지도 못했지요. 늘 자식만 바라보고 자기 삶이 없었던 모친은 배우지 못한 한이 가장 컸습니다. 못 배워서, 지성이 부족해서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것이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배운 사람도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존경했던 문인이나 학자도 정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자 외로워졌습니다. 자신을 홀대하는 세상에 대한 노여움이 읽어졌습니다. 젊은이들과 소통이 활발했던 분도, 공자 시대에도 요즘 젊은것들을 욕했다며 세대 간의 갈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강의를 하셨던 분도, 저분은 아니겠지 했던 분도 갑갑하게 변하셨지요. 왜 나이가 들면 외골수가 되는 것일까요? 학벌의 문제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요?
자식과 대화가 단절되고 다들 미쳤다 해도 태극기를 들고 나갔던 노인들의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고, 극단적인 시위를 하고 돌아가면 숨통이 트이고 살맛이 난다 했습니다. 그곳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노인은 숨을 못쉬고 있다는걸 몰랐습니다. 관심이 없었죠. 우리는 혹시 노인이 숨을 쉴 수가 없고 살 맛이 안나도 "그야 뭐 어쩌겠어, 늙으면 그러다 죽는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는 히틀러와 뭐가 다를까요? 생산가능인구가 아니면 쓸모없다 버렸던 그때보다 무엇이 성장한 것일까요?
노인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고생 고생하며 살아냈던 시대와 그 시대의 가치가 말살된다고 느낀 것일까요? 잉여인간 취급을 받으며 사회의 외곽으로 쫓겨나고 내몰린다고 생각했을까요? 자연은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데 왜 인간에게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남는 것일까요? 노인은 그저 입다물고 구석에 처박혀 있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는 문제가 없을까요?
새내기 노인인 저는 '내가 그런 모습으로 늙을 리는 없다'며 스스로를 믿고 있습니다만, 조금만 돌아보면 저도 이미 완고하고 찌질한 노인입니다.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됩니다. 뭔가 섞일 수 없는 소외감과 위기감과 열등감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은 "나도 왕년에 다 해봤는데..." 하며 싸한 말을 꺼내고 말았지요.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말 같잖은 말을 꺼낸 저도 매우 심란했습니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제 모습이 참으로 구차해 보였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을 질투한 것일까요? 무능한 저에게 화가 난 것일까요?
반면, 70이 훨씬 넘은 선배는 볼 때마다 거슬립니다. "그래, 선배를 보면 늙으면 사라지는 게 맞아... 조용히나 있든지.. 자꾸 알아달라 하고 나서서 걸리적거리고 간섭하고 가르치려 들고.. 그 말을 누가 듣는다고... 눈치도 없이... 귀찮게 자꾸 물어보고 추켜세우면 좋아하고... 권위의식, 숨막히게 하는 경직된 사고... 도대체 도움이 안돼..." 아마도 젊은 누군가는 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죠.
사실 이건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한 몸도 병들고 망가지듯이 마음도 그럴 테지요. 소소하고 자잘한 미움과 불평과 질투와 두려움이 세월이 흐르면 뻔뻔하고 완고하며 독단적인 가면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성찰의 기회를 놓치면 곧 관념 관습으로 굳어 버리지요. 그리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제발 없어졌으면 싶은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들러는 '늙어갈 용기'를 말하면서, 먼저 '대화할 용기'를 가지라 했습니다. 남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들러의 말처럼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시키는 대로 잘하기 위해서였지 어른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인 건 아니었지요.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우리는 시키는 대로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나의 생각이 어떤지는 저 자신도 관심이 없었고, 남의 생각을 물은 적도 없었습니다. 나의 삶을 이끄는 것은 주어진 가치와 주어진 의무였습니다. 복종은 즐겁지는 않아도 안전했고, 수동적인 삶은 주도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없으니 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해본 적이 없고 강요와 복종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말이 들리지 않고 듣는 법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죠.
저는 상대가 말할 때 저 입을 어떻게 다물게 할까를 생각했고, 너보다 내가 우월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혹은 어떻게 하면 욕 얻어먹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까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겸허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들으려는 노력을 할 것 같습니다.
오해하고 곡해하고 노여워하는 삶은 너무나 어리석고 소모적입니다. 이 억울한 길을 굳이 걸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끝에는 불행이 있는데도 말이죠.
지금의 제 귀는 거칠고 두터워서 잘 안 들립니다. 삐딱하게 들리며 띄엄띄엄 듣습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상대의 입장을 인정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이순 耳順이겠지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네 말도 맞고 부인 말도 맞다고 했던 황희 정승이 이미 모범을 보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 흔한 꿀팁도 없지만 늙은이는 그걸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고한 자기 생각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를 돌아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스크루우지 영감처럼 자기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돌아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원인을 알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인정되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 고집을 꺽지 않습니다. 하도 부딪치고 살다 보니 그건 알겠습니다. 견고한 나의 생각이 정말 옳은 것인지, 무엇이 두려워서 이렇게 단단해진 것인지, 나의 민낯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달으면 사람은 변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아름다운 공존과 평화로운 노후는 헛된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기시미 이치로의 <늙어갈 용기> 중에서 아들러의 말, 2016
다행히 나이가 드니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목표를 향해 죽어라 달려가지 않아도, 좀 쉬고 꾸벅꾸벅 졸아도 그렇게 살면 큰일 난다 다그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아도 걱정하고 들들 볶는 부모 친지가 이제는 없습니다. 나의 삶을 간섭당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지요. 내 인생은 온전하게 나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허영을 부릴 이유가 없으니 돈은 조금만 있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고맙고 다행한 일이죠.
사랑이 인간의 마지막 가치인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조차도 자식이 힘들게 하면 '나가 죽어라' 말하는 게 인간임을 알게 되었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에게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그 인간 때문에 죽고 싶어 지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기도 했죠.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 다 씁쓸했습니다. 그걸 깨달아서 좋았습니다. 사랑의 열병에 몸 마음이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이 없으니 다른 즐거움이 생깁니다. 유유자적한 한가로움이 얼마나 좋은지요.
결론은 이겁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라는 것, 충분히 자기를 돌아보고 삶을 정리할 시간적, 공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가구도 닦으면 반질거리며 고풍이 있듯이, 은행이나 단풍이 아니더라도 떨어지는 낙엽은 다 아름답듯이 사람도 그렇게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스스로 초라해지는 것이 노인입니다. 너무 고마운 것은 초라해지기 전에 비교를 멈추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별 것도 아닌 인간임을 이젠 알게 된 것이지요. 잘나고 싶고 이기고 싶을 때에는 몰랐던 사실이죠. 별 것 아닌 나를 인정하고 못나고 게으른 자신을 탓하고 쥐어박고 괴롭히기를 멈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늦으면 안 될 숙제도 하려고 합니다.
내가 이런 인간임을 인정하고 그만 괴롭히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자신에게 지우지 말자. 청년은 청년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자. 헛꿈을 접고 즐겁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가끔은 틈을 내어 살림도 정리하자. 미련을 버리듯이 더는 쓸 일이 없는 옷이며 그릇이며 이불이며 하나씩 비워내자. 분주했던 청춘의 흔적과 끈질긴 노욕도 함께 비워내자. 젊은이는 욕심을 부리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만, 늙은이는 그만큼 얻어터졌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부질없는 자존심 때문에 못한 말이 있으면 지금 하자. 모두가 깊어가는 가을이라 더더욱 좋다. 좋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참았던 것, 고마운 줄도 몰랐던 것, 너무 뻔뻔하게 살았던 것, 솔직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미안했던 것을 미루지 말고 이야기하자.
빡빡한 바름의 기준을 가지고 그만 괴롭히고 그만 싸우자. 자식이건 며느리건 배우자건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싸움닭처럼, 투견처럼 물고 뜯으며 살아서 될 일인가. 그동안 나와 남을 못살게 굴었던 세월을 사과하고 가자.
이걸 늙은이가 하자. 우리도 젊을 때는 이렇게 살지 못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바라지 말고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늙은이가 하자. 어지럽힌 삶을 정리하자.
시작을 했으니 저는 오늘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혹시라도 거절하시면 창피당할까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긴 세월 내내 편치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다음에 뵙게 되면 거리낌 없이 웃으며 다가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