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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Jan 07. 2018

소박함을 명상하다

나에게는 소박함도 욕심이었다


부산 남포동 소화방의 추억


아득한 시절 이야기다. 연도가 기억날 리 없다. 부산 남포동에 처음으로 전통 찻집이 생겼는데 이름이 소화방(素花房)이었다.


찻집 주인은 소화를 흰꽃이라 설명했다. 희다는 의미는 참으로 깊었다. 흰 것은 본래를 의미했고, 꾸밈없고 큰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당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 출간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무당 딸의 이름이  소화다. 그래서 소화라는 이름에 애틋함이 더해졌다. 우리는 그 이름이 너무 곱고 분위기도 좋아서 자주 가곤 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 나무 문짝을 밀고 들어갔면  땡그랑거리는 풍경 소리가 났다. 좁고 긴 실내에는 옛날 국민학교 걸상 같은 나무 의자와 탁자가 있었다. 창가의 작은 방은 두 개의 낮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 항상 어둑하고 따뜻하면서도 조용했다. 꾸미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하나가 매우 신중하게 선택된 것이었고 고집스럽게 무언가가 지켜지고 있었다.


주인은 돈 벌 생각 없는 건축가라고 들었다. 일본에 다녀와서 한국에 이런 가게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고 했다. 어떻든 소화방이 30년이 흘러도 거의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근처로 찻집을 옮기면서 마루 바닥 하나하나까지 고집스럽게 옮겼다 한다. 오래된 유물처럼 탈색된 낡은 메뉴판도 그때 그대로인듯 했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그때는 마냥 좋아 보이던 소화방에 질문을 던져 본다. 꾸미지 않고 버리지 않고 바꾸지 않는 소화방의 이 소신은 무엇일까.  주인은 무엇이 그토록 싫었고 무엇을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헬런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과 '소박한 밥상' 등의 저서로 오래도록 회자되는 세계적인 지성인이자 실천가이다. 이 부부가 뉴욕을 떠난 것은 1932년 미국 대공황으로 불황과 실업이 최악이었던 시기였다. 단풍나무가 있는 조용한 버몬드 숲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재료로 손수 집을 짓고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고 계절이 주는 채식을 했고 먹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가축의 하인으로 살다가 가축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삶을 거부했고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돈을 위해 살지 않았다. 삶이 틀에 갇히고 강제되는 것 대신 삶이 존중되는 모습을 추구하고 싶어 했다.


나는 한 때 이 책에 미쳤었다. 줄을 그어가며 메모하고 실천에 옮길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귀농학교에 등록도 하고 재봉틀을 사서 귀찮은 바느질을 배우기도 했다. 개량한복 바지 하나를 허리 아프게 만들었지만 삐딱한 바느질이 가관이었다. 옷은 그냥 사서 입자 마음을 바꿨다. 무엇 하나도 쉽지 않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무욕의 삶은 부럽기도 했지만 복잡하고 어렵고 두렵기도 했다. 나처럼 욕심 많고 바라는 것 많고 몸이 무거운 사람이 넘볼 삶이 아니었다. 소박한 밥상은 탐욕 가득한 마음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윤홍렬님 사진, 남원 서천리 돌장승 (중요민속문화재 20),  사진 사용 허락을 받고싶지만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아주 오래전 언제였던가 한 남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어느 가난한 소수민족 틈에서 하루 일을 해주고 내일도 없이 하루를 사는 고려인이었다. 그는 집도 없고 이름도 없고 신분증도 없었으며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고 피붙이도 없었다. 고려말을 하니 고려인이라 할 뿐, 그는 국적도 없었다. 


한 끼 식사는 손톱만한 육포 조각과 콩 몇 알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먹고도 일하며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그는 서툴지만 한글로 짧은 시를 썼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완전한 무소유였고 그래도 불평과 한탄과 불안의 그림자가 한 자락도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왜 울었을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소박함이 그리웠을지는 모르나 소박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소박한 삶을 동경하기는 했으나 소박한 삶을 살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소박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소박이라는 또 하나의 허영을 향해 달려가다 도착도 하기 전에 멈춘 것이다.


소박함에 대한 나의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에 안 드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역류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적 허영이고 욕심이었을까? 아니면 흰 것에 대한, 본래에 대한 막연한 회귀본능이었을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소박함에 대한 갈망은 너무나 큰 욕심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높은 곳을 바라보고 큰 것을 갈망하는 나의 욕심이 버려져야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그 마음이 가난해져야 얻어지는 천국임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세상 무엇에도 고마워할 수가 없었고 무엇을 누리고 있어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마음은 가려둔 채 손에 잡히지 않는욕심을 향해 앞만 보고 가던 나이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이 허기를 달래주지 못했다. 그리고 항상 나를 괴롭혔다. 너는 왜 이러고 있냐고 더 노력해서 어디든 가보라고 자신을 어지간히 닦달하고 괴롭혔다. 


비어 있어서 오히려 채워지는 행복은 욕심으로 탐한다고, 욕심으로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나의 욕심이 버려지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의 행복이었다. 나는 이제 뒤돌아 본다. 그리고 이 마음을 버리기 시작한다. 너무 크고 허황했던 욕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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