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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Mar 28. 2019

망한 삶도 달라질 수 있다

마음수련 명상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내 인생을 누가 망친 걸까?


반려견 1


며칠 전, 예능프로인 <집사부일체>에 다양한 반려견이 출연했다. 반려견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다. 한마리가 짖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얌전하던 개들도 덩달아 죽기살기로 서로를 향해 짖어댔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은 노련했다. 묶여있던 개들을 한 마리씩 시간차를 두고 줄을 풀어줬다. 물론 주인은 개들로부터 떨어졌다.


이제 개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야하는 환경이 주어졌다. 사람이 지시하거나 통제하지 않아도 개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호적이었으며 서로에게 다가가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즐겁게 뛰어다녔다. 묶여 있을 때는 서로를 거부하고 경계하고 혹은 예의 없이 선을 넘던 개들이었다. 


문제가 되었던 개는 두유(견종: 재패니즈 스피치)였다. 두유는 오직 주인 한 사람만을 좋아하는 개다. 주인에게는 너무나 착하고 영리한 개지만 주인 외의 모든 사람은 무섭게 물어버린다. 주인 외에는 개든 사람이든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강훈련사는 마지막으로 두유의 줄을 풀어줬다. 주인은 불안하게 지켜봤다. 솜뭉치 같이 귀여운 포(견종:비숑)가 두려워하지 않고 두유에게 다가갔다. 두유는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물지도 않았다. 심지어 엉덩이를 흔들며 함께 뛰어놀았다. 두유가 문제견이 된 것은 품안에 넣고 주인만 바라보게 키운 탓이었다. 


강훈련사는 말했다. 

"개들은 스스로 해결하게 하면 훨씬 더 현명하고 좋은 선택을 해요."


반려견 2


무리 중에  몽글이 (중국 황실견, 차이니스 샤페이)가 있었다. 5마리의 반려견 중에서 유독 사회성이 제로였다. 거칠게 짖어대서 모든 개들을 덩달아 짖게 만든 주범이다. 사실  몽글이는 그저 같이 놀자는 뜻이었다 한다. 좋아하는 여자아이 고무줄 끊고 달아나듯이 이 녀석도 의사표현이 서툰 것이다. 몽글이는 어떤 과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둔했으며 힘만 세고 호기심도 없었다. 


황실의 명견이 왜 바보가 되었는지 강훈련사는 설명했다.

"보통 황실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죠. 사회성이라는 게 엄청난 두뇌활동이거든요. 그런데 황실에 있던 개들은 내가 사회적이지 않아도 돼요. 샤페이는 편했어요."


반려견의 문제는 모두 사람의 문제였다. 이날도 역시나 강아지를 대하는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자 문제행동이 사라졌다. 강아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기다려주자 슬기롭게 해야 할 행동을 찾아서 했다. 견주들은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라며 만세를 불렀다. 물론 달라진 건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랑한다하면서 자식 인생을 망쳤듯이, 사랑하는 반려견의 견생도 망친 것이다.


사람 3


60년대의 부산은 피난민의 도시였고 먹고살기도 바빴다. 학교에서 월사금이 밀린 아이들이 벌을 받고 집으로 쫓겨가는 일도 흔했다. 그렇게 모두가 가난했다. 그 시절에 연필공장 아들이 있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풍족하고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채워주던 부모가 자식의 무능을 키웠고 일생을 비참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렸고 이혼을 당했으며 정보원이 자신을 뒤쫓는다는 피해망상증 환자가 되었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에도 거리를 떠돌며 동창생들에게 용돈을 얻으러 다녔고 어느날 행방불명이 되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돕거나 참견하면 아이는 의존적으로 변한다. 언제든 자신이 곤경에 빠지면 부모가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갖기 어렵게 한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 살림, 2015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을까?


항상 개인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았던 부모였다. 속 깊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방임이고 회피였다.  어머니는 남들처럼 학교 가고 남들처럼 시집가서 자식 낳고 사는 게 원하는 전부였다. 안정된 삶을 가진 딸이 꼬박꼬박 용돈과 명절과 생일을 챙겨주면 그녀의 행복은 완성되는 듯했다. 어머니가 원했던 것은 어머니가 부러웠던 누군가의 삶이다. 결국 자식에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강요한 것이다.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처럼 살기 위해 괴로워하고 발버둥 쳤다.  


육아의 책임은 장녀에게도 나누어졌다. 내가 막내의 학부모 역할을 한 것처럼 장녀인 언니는 나의 보호자였다. 어릴 때는 엄마가 모든 것을 선택해 줬다. 언니가 성장하자 언니가 선택해준 학용품, 언니가 골라준 옷을 입었다. 나는 선택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지켜본다는 것은 아이가 잘 대처하고 있는 동안에는 부모가 먼저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을 주어 적절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당근의 육아도, 부적절한 행동을 허용하는 방임의 육아도 아니고, 벌에 의해 부적절한 행동을 멈추게 하는 채찍의 육아도 아니다.

그러나 온화하고 단호하게 아이를 대하라 권한다. 단호하다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과제를 분리한다는 말이고 아이의 과제에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 살림, 2015


부모를 원망하고 환경 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책임을 모두 과거에 전가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나의 현주소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주어진 이 모든 것이 내 삶이고 나의 과제이니까. 


인생의 과제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 찾기


밤늦게 비까지 내리는데 세종시에 갈 일이 생겼다. 깜깜하고 낯선 신도시를 달리다 보니 잔뜩 긴장이 되었다.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나?  어차피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신호등 잘 살피며 가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인데 왜 이럴까 싶었다. 사고 날까 봐? 다칠까 봐? 바보같이 몇 바퀴 돌까 봐... 아니, 그런 위험은 언제든 핸들을 잡는 순간부터 있는 것이다. 두려워하든 마음을 졸이든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나고  일어날 일은 일어 난다. 


인지를 못했을 뿐이지 평생을 나는 이런 긴장과 불필요한 걱정과 스트레스 속에 살았는지도 모른다. 실패할까 봐, 내가 바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봐, 자신에게 좌절하게 될까 봐, 비난받을까 봐, 외톨이가 될까 봐 ~까 봐 ~까 봐 하면서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많았다.


현실을 건강하게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은 경험이라는 필터다. 이 필터는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부정적인 경험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살게 만든다. 이 색안경과 같은 마음을 인식하는 과정을 자기 성찰이라 할 수 있다. 그 방법이 명상인 것이다. 마음은 마음으로 찾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자기를 돌아보면 문제가 발생한 궤적이 보인다. 원인만 알아도 스트레스는 많이 사라진다. 원인을 안다는 것은 내 삶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말이다. 과거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으로부터 벗어난 만큼 스트레스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패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설 희망도 가지게 된다.


마음수련 명상은 어떻게 나를 도울 수 있나?


원인을 안다고해서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바보같이 왜 이러지 하면서 어리석은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인간이다. 원인이 된 마음이 내 속에 있는 한 물귀신처럼 나를 잡아당기게 된다. 그 마음은 버려지고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수련 명상이 필요한 대목은 여기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이 모든 생각이 허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명상센터에 등록한 첫 날 첫 시간부터 듣는 말이니 모르면 바보다. 문제는, 알아도 늘 잊어먹고 허상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관습처럼 굳어진 마음의 힘이 이성보다 강한 탓이다. 그러나 허상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우치면 나를 괴롭히는 모든 마음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마음이 왜 허상인가? 허상이란 무슨 뜻일까? 


마음은 형성되는 경로가 있다. 마음을 만드는 주체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 몸이다. 나라는 몸이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사진의 형태로 뇌에 저장한 것이 마음이다. 이 사진은 감정과 오감과 생각이 포함된 삶의 기억이다.


엄마에게 처음 매맞았을 때를 떠올리면 꿈처럼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뇌에 저장된 사진이 출력되는 것이다. 그 사진의 억울함과 두려움과 미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스트레스와 고통의 주범이 바로 사진인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허상이다. 허상은 없다는 말이다. 꿈은 꿈 속에서나 있는 것이지 깨고 나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사진을 버리는 것이 마음수련 명상 방법이다. 


마음 버려라, 비워라, 그만 잊어버려라, 툭툭 털어 버려라 말은 쉽게 하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방법을 몰라서 막연하고, 둘째는 허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정확하게 배우고 매일 운동하듯이 반복하여 익히고 버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로 가려면 서울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 한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한다. 망망대해에 배를 띄워도 나침반을 가진 사람은 헤매지 않고 앞만 보고 갈 것이다. 방법을 안다는 것은 나침반을 가진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마음이 벗겨지면 세상은 보는 대로 있는 대로다. 정확하고 명료하다. 명상은 황홀경이나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망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을 하면서도 명상이 가능했고 정신은 더 말짱해졌다. 나의 어리석음이 알아지고 나를 혼미하게 만든 마음이 버려지니 즐겁고 개운했다.


나는 기분 좋게 귀가했고, 밤새 잘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부모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를 바꿀 수는 있다는 것,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다는 것, 반려견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인이 달라지면 반려견도 달라지고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에 대한 글 말이다. 사람의 헛된 생각과 욕심이 버려지면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행복한 사람은 더 큰 행복을 스스로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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