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돌아보기 명상
바람도 선선한 오후, 한가로이 걸으며 삶을 즐기고 있었다. 스트레스 쌓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던 후배를 떠올렸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렇게 쉴 줄 알면 좋을 텐데...' 아쉬워하며 여유를 즐겼다.
하산길 어느 순간에 내 모습이 보였다. 뭐 하나 얻을 거 없나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 말이다. 이쁜 풀이라도 하나, 구석탱이 정감 있는 풍경이라도 어디 없나, 사진 하나 얻어걸리면 좋을 텐데... 뭐 그럴듯한 영감 하나 떠오르지 않나.. 아 깊은 숨도 쉬어야지... 내가 그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은지 몰랐다.
자그마한 연밭에 쭈그리고 앉았다. 연잎 아래로 꼬물거리는 생명들이 부지기수였다. 너도 바쁘고 나도 바쁜데 너의 치열함에는 없는 부끄러움이 인간인 나에게는 있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훔치고 있었다.
마르지 않는 욕심의 샘물이 내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명상을 해본다. 혀는 항상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 들고, 귀는 달콤한 소리만 듣고 싶어 한다. 칭찬 들으면 입이 찢어지고 욕 한마디 들으면 살이 떨린다. 좋은 것은 다 보려고 하고 온갖 것을 다 기억하고 싶어 한다. 천재들을 보면 나에게 그런 재능 없음을 아쉬워한다. 가당찮고 감당못할 욕심이 끝이 없다. 열등감이 크기 때문이다.
사천왕문은 도적을 지키는 문이었다
절을 찾을 때 나는 보통 사천왕문을 비껴간다.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둡고 먼지도 많고 기분이 별로여서다. 어쩌다 이날은 사천왕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험상궂게 부릅뜬 눈을 올려다보며 나는 알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하! 나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도둑이 눈으로 뭘 훔쳐가고, 귀에는 뭘 담아가는지, 머리 속엔 뭘 채워 가는지 지키고 선 것이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절간 안에는 모르긴 몰라도 도를 훔치려는 도적이 넘치지 않겠는가. 나역시 공부를 할 때나, 명상을 할 때나 마찬가지였다. 노력한 시간보다 이루어지지 않음을 한탄한 시간이 더 많았다. 법당 안에서부터 절 마당 가득한 연등까지 도둑의 심보 아닌 것이 없어 보인다. 머위 한 잎이라도, 풀잎 하나라도 주워가야 직성이 풀리는 속인에 이르기까지 생각하니 온 천지가 도적의 판이다.
그래서 사방의 하늘을 지킨 것인가. 그래서 저 허황한 용의 꿈을 비틀어 조른 것인가. 여의주를 뺏은 것인가. 나 하나의 승천을 위해 그렇게 틀고 앉아 명상을 하고, 나 하나의 성취를 위해 무릎이 까지도록 절을 했다면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이 나이가 되어도 나의 삶은 비틀거리고 사람과의 문제는 힘들기만 하다. 흔들리는 추처럼 중심잡을 날도 있을까. 말없는 자연 속에서 혼자 터지고 쥐어박고 난리를 부렸던 나의 명상이었다.
나의 삶의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올챙이와 연잎과 이끼처럼 함께 사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질문 하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타자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는 게 공동체 감성을 기르는 길이자, 인간 이해의 최고의 지평이다. - 아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