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에는 야외 식당이 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이 너무나 좋아서 사람들은 날씨만 좋으면 밖에서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항상 식탁을 맴도는 길고양이 가족이 있다. 애비는 알 수가 없고 어미 한 마리가 올해만 두 번의 새끼를 낳았다. 7마리의 크고 작은 새끼를 거느리고 있다.
고양이 식구가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고양이의 몸짓은 소리도 없고 조용하며 눈치 빠르고 조심스럽다. 늘 구석에 숨기를 좋아해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사람만큼 자기가 있다는 것을 요란하게 드러내는 종족도 없는 것 같다.
새끼를 자꾸 낳으니 먹을걸 주지 말라 하지만 생선 반찬이 나오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탁자 밑으로 자꾸만 생선을 준다. 고양이 무리가 어디 숨었다 나타나는지 이내 달려와 이쁜 소리를 낸다.
길고양이 가족을 사람이 보살피는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살피고 있는 것은 그다지 이쁘지도 않은 고양이 가족이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여 앉아 "아이구 이뻐라~" 소리를 반복한다. 고양이가 행여나 눈길 한 번 줄까, 혹시나 고양이 심기를 거스를까 염려하며 조용히 앉아 기다린다.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 그녀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내미는 손길은 그 어느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녀는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사람을 대하듯이 고양이를 경계하지 않았다.
식당의 연세 드신 언니는 가끔 쥐나 뱀을 잡아다 문 앞에 두는 고양이가 말할 수없이 뿌듯하다. 나를 알아주고 나의 진심에 보답해주는 고양이는 인간세상에서 받았던 서운함과 배신감을 다 녹여주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굳이 다가가지 않는 나도 고양이만큼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리고 나타나면 반갑다. 나는 왜 사람에게 이렇게 반갑지 않을까. 이처럼 먼저 다가가 손 내밀지 못하는 것일까. 뭐 뻔하다. 내가 거절당하면 아프니까 그것이 두려워 내가 먼저 거절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를 지키기 위해 긴 세월 이렇게 살았던 결과물이 지금의 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뭐 그런 말을 고양이에게는 하지 않는다. 설혹 고양이가 나를 거부해도 상처받고 돌아서지 않는다. 어떻게 내 마음을 몰라줄 수가 있냐고 원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각을 한다. "고양이가 왜 저러지?" 주인의 팔과 다리를 물어버리는 강아지에게도 사람은 오히려 짐승을 걱정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 이유가 뭐지? "
나는 사람 중 누구에게도 그러지를 못했다.
나이 들면서 나는 엄마가 답답했고 속이 터졌다. 엄마는 자식의 속을 몰라 애를 태웠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외로운 섬이었고 동생은 자주 술을 퍼마시고 들어왔다. 그 시절 나는 이 답답한 집에서 탈출하게 되는 그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식구들이 상처를 받건 말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상처밖에 없었다.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했지 누구의 안색도 살핀 적이 없고 누구의 말에도 귀기울인 적이 없었다.
사람은 그 눈과 귀를 닫은 지 오래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서로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 우리의 상처는 대체 얼마나 깊은 것일까.
< 살구라는 이름의 고양이 >
모로 누워서
눈 감고
아이들 집 고양이 생각을 한다
어미를 졸라
오천 원을 얻은 원보가
새끼고양이를 안고 오던 날
내가 목욕을 시켜주었다
이번에 가니까
많이 컸었다
오줌 쌌다고 성화하는 어미
원보는 냉큼 고양이를 안고 갔다
목욕탕에서
어리광 섞인 고양이 울음
사위가 말했다
" 아이고 아이고, 합니다 "
식구들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모로 누워서
눈을 감고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다
살구라는 이름의 고양이
박경리님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