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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Oct 31. 2019

<춘희막이>

열등감에 대하여

무시당해도 끄떡없다

춘희: "목욕 안 했지, 할매?" 
할매: (눈을 치켜뜨며) "뭐~?"
춘희: "목욕 안 했지요?" 
할매: "목욕 안 하고 지금 내가 뭐하고 나오노? 팍 차뿔라! 목욕 안 하고, 목욕탕서 이제껏 뭐하고 나오노?"

할매는그렇게 구박하면서도 춘희의 눈에 안약을 넣어 준다. 쿡쿡 쥐어박으면서.



춘희는 소위 세컨드다. 바람난 영감 때문에 좀 모자라는 춘희를 할매가 직접 후처로 데려왔다. 

춘희 그녀의 허리는 낫처럼 ㄱ자로로 꺾여 있다. 지팡이도 없이 뒤뚱이며 걷는다. 성한 이빨이 하나 없다. 그녀는 아프다 소리도 할 줄 모르고, 바라는 것도 없고, 아무런 불평도 없다. 


할매에게 춘희는 뭘까? 하나부터 열 가지를 다 가르쳐야 하는 골병 덩어리다. 할매 마음대로 쥐어박을 수 있는 구박덩이고 가족이다. 춘희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면 함께 살 지도 않았을 것이다.


할매가 외출하면 춘희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춘희 마음에는 할매가 엄마나 마찬가지다.  

아이고, 아무것도 안 먹고 싶다. 안 넘어가 못 먹겠고, 먹으면 생각나고, 눈으로 보니 눈 안에 (할매가) 뻔히 보이고, 안 먹고 싶다. 보고 싶고... 아이고, 보고 싶고! 어이야, 전화 한 통 해봐라. 보고 싶다. 아이고... 보고 싶고! 엄마 없고... 흐으 .. (춘희는 결국 울었다.)



춘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매는 여전히 쥐어 박는다.

- 저 안에 있는 담배 내온나. 내 이거는 독해서 파이다(별로다).
- (춘희는 동문서답이다.) 할매, 하드 줄까요?
- (할매는 벌써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어?
- 하드.
- 담배나 도고(달라니까)... 아이고 씨팔! 에이, 시팔!(할매가 담배를 가지러 간다.)
- (춘희는 머리 긁으며 혼자말로) 할매 가져간 거 다 폈나...
- (할매의 구박이 시작된다) 저 문은 왜 닫아놨노? 응? 저 문 열어삐라, 왜 닫아놨노? 쪄 죽을라고 닫아놨나? 

콩을 거두는 일을 하면서도 내내 지청구를 듣는다.

뿌려라. 바람 부는 데로. 요것도 뿌리라. 아이구 참 내! 요것부터 뿌리라니까... 콱, 쥐박아뿌까



머리 감는데도 춘희는 구박덩이다. 딸처럼 보살피기도 하지만 뜨거운 물도 사정없이 확 부어 버린다.

- 요 대가리 쳐 박아라!
- 앗, 뜨거라이.
- 아이구 거짓말도 진짜 심하게 한다. 뭐가 뜨거워? 거짓말하는 거 봐라, 참!

그러고는 또 춘희의 머리를 빗겨주고 어린 자식인듯 옷매무새를 봐준다.



할매는 끊임없이 춘희에게 돈을 가르친다. 이거는 천 원짜리, 이거는 오천 원짜리... 그리고 춘희를 양로원에 보내야 할 그 때를 위해 돈을 모은다. 정작 춘희는 돈을 모른다. 아예 관심도 없다. 돈 없어지면 의심만 받을테니 아예 돈과 재물은 선 밖으로 내 보낸 삶이었다. 을 중에 을인 춘희가 가장 속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춘희는 가히 지혜롭다.


구박을 하고 화풀이도 하지만 춘희는 천지에 의지할 이가 할매 뿐이고, 할매도 춘희 때문에 외롭지 않게 산다. "가자 가자, 같이 가자."로 끝나는 박현지 감독의 2015년  다큐 영화 <춘희막이>다. 


잘남과 못남


어느 과학 선생님이 생각난다. 하루는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수업이 너무 완벽해서 누가 좀 봐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는구나를 그때 알았다. 나도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누구에게 뒤지는 교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웃기는 인간들이지 않은가. 


어느 간호사가 병원을 그만 뒀다. 동료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 사퇴 권유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본인 생각은 달랐다. 자기 만큼 일 잘하는 사람도 없고, 자기 만큼 병원을 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니 조금만 인정을 못 받아도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잘남과 못남의 기준 속에 있는 한, 열등감은 벗어날 수 없는 이중의 굴레다. 어떤 분은 자신을 길가에 있는 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신다. 물론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잘남이 어디 있고 못남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모두가 생긴대로 그냥 사는 여기가 천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그런 존재였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누구나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우뚝 서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장 바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꼴찌를 해도 자기보다 못난 인간이 하나쯤은 있다. 그렇듯이 쥐뿔도 없는 나 역시 세상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살았다. 사회 저명인사들을 말할 때 윌는 흔히  "글마, 그 새끼, 걔" 라고 흔히 부르지 않았던가. 어느 미친 놈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는 막말도 서슴없이 했다. 불행을 겪으면 하늘에 삿대질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왜 나에게 이러시나요? 당신이 뭔데 나에게..." 나 또한 근본적으로 다를 바없는 인간 말종이다.사람은 마음 저 밑바닥에 밑바닥까지 그 잘남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잘난 것이 없고 무지할수록 더 그랬다.


할매에게는 춘희가 마구 무시해도 좋은 존재다. 아니 마구 무시해도 되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무시당해도 춘희씨는 열등감이 없다. 그녀는 할매에게 분노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못난 것을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성인이 되든지, 바보 천치 멍충이가 되어야 하는걸까?


아들러는 열등감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글을 남겼다. 그러나 글과 말이 나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읽어서 구원이 되는 것이라면 벌써 되었겠지.  사람의 마음이 버려진 자리에는 잘날 필요도, 못날 이유도 없는 본래가 존재한다. 본래가 있기에 사람은 생긴 대로 살 수가 있다. 애쓰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고 그냥 살아도 행복하고 빛날 수가 있는 것은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춘희씨는 배운게 없고 가진게 없어서 본성에 가까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끄떡도 안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나는 열등감과 우월감이라는 틀 속에 있었다. 그 속에서 승자가 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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