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했던 30년은 누구의 잘못일까?
고흐의 일생을 작품과 함께 짚어본 적이 있었다. 고흐의 불행 때문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까미유의 정신병원에서의 한해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고흐는 그나마 행복한 사나이였구나 생각되었다.
까미유는 로댕의 명성에 가려지긴 했어도 당대에 이미 인정을 받았던 조각가였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 때문에 흙과 돌을 버렸다. 그녀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서 지낸 3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점의 작품도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불행하기만 했다.
반면, 고흐는 발작 때문에 그림을 못 그리게 될까 봐 스스로 정신병원을 선택했다. 끓어오르는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어떤 비난과 가난과 멸시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한때, 갈 곳 없는 창녀의 가족을 돌보며 행복하기도 했다. 동생 레오가 보내주는 돈이 고맙고 미안해서 돈이 적게 드는 스케치를 했고, 돈이 오면 빵 대신 모델과 물감을 샀다. 그에게는 그림이 전부였다. 고흐 자신보다 그림이 소중했다.
까미유 끌로델을 그린 영화로는 1989, 브루노 누이땅 감독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 고혹적인 이자벨 아자니가 역을 맡았고, 그녀의 흥망성쇠와 사랑과 배신과 기쁨과 절망을 다 그려냈었다.
2013년, 브루노 뒤몽 감독의 이 작품은 줄리엣 비노쉬가 맡았다. 저러다 슬퍼서 죽겠다 싶을 정도로 그녀의 내면 연기는 깊었다. 메마르고 스산한 1915년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의, 상처와 절망과 분노와 눈물밖에 없는, 출구 없는 마지막 생을 그린 영화였다. 끝까지 보기가 힘들 만큼 갑갑한 영화였다.
1864년생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은 1885년 로댕의 조수가 되었다.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15년을 살았다. 낙태의 상처와 결혼 의사가 없는 로댕에 대한 배신감이 깊어지며 결국 헤어졌다.
1913년, 가족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정신병원에 갇힌 30년 동안 동생 폴이 가끔 면회를 왔을 뿐,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끝내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의사는 퇴원을 권했지만 가족은 그녀의 퇴원을 원하지 않았다. 잊고 살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1943년 79세의 나이로 타계했고 집단 매장되어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1951년 그녀의 첫 회고전이 열렸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폴, 실은... 그들은 내게 조각을 강요하고 있어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날 괴롭히는 거야
하지만 절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거야
약속해줘, 언제까지 날 지켜주고 버리지 않겠다고
내 피 속에 독약이 흐르고 있어. 너무 아파.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아
신교도 로댕이 나한테 독약을 먹였어
면회 온 동생 폴에게 그녀가 한 말이다. 풀은 그녀를 진단한다. 그녀는 과대망상과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천재이며, 자부심과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고. 자신도 누나와 같은 기질이지만 신에 순종하는 영적 귀의로 파멸을 면했다고.
인간의 마음은 무서운 것이다. 그녀는 30년 세월 동안 오직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았다. 만약에 그녀가 마음수련 명상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 억울했던 마음이 자신이 만든 것이고 자기 마음속에만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마음을 로댕은 알 수가 없으며, 그녀 또한 로댕의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추측이 오해투성이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에고는 너무나 강해서 이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죽을 만큼 괴로우면서도, 자기 생을 파멸시키면서도 로댕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까미유 그녀도 자기 마음을 이기지 못해 불행을 자초했다. 분하고 억울했던 자신의 감정이 너무 소중해서 억울한 인생을 선택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느라 자신의 문제점은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성장을 멈추었다.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를 고립시켰다.
불행은 그녀 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도 소소하게 까미유처럼 살고 있다. 까미유처럼 모르고 살고 있을 따름이다.
마음수련 명상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장애물을 버리고,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면 어찌 인생이 고맙지 않겠냐는 것이 요지다. 고마운 마음은 행복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까미유 그녀가 마음을 돌아보고 버릴 수만 있었다면 아주 원숙하고 기분 좋은 그녀의 작품이 남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사람의 불행이 안타깝고 빛나는 재능이 아까웠던 영화였다.
소원하건대, 불행한 인생은 까미유 끌로델 그녀 한 사람으로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