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혜자의 이야기
주인공 혜자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며 몸은 늙었다. 그러나 마음은 기억 속의 청춘으로 살게 된다. 젊을 때는 때로 과거가 불편해서 잊으려 노력도 하지만, 늙으면 과거가 가장 좋고 아름답다. 더는 미래가 없기 때문일까. 혜자가 살고 있는 과거도 아름답다.
# 제삿날, 젊은 시절의 남편 사진을 보며 혜자는 말한다.
나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부터 불행했던 기억까지, 그 모든 기억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 기억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무섭기만 합니다. 당신이 죽었던 날보다도, 지금 당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무섭습니다.
# 며느리도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물었다.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가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가...
# 술에 취한 혜자가 남편에게 말한다. 오로라는 지구 바깥에서 온 에러지만 너무 아름답다고.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눈물 나게...
# 남편이 울며 혜자에게 말했다.
내 인생을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건 나를 떠난 엄마나 때리던 아빠가 아니라 나 스스로였어요. 평생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품지 못해서 괴로웠어요. 실수가 만든 잘못이고 축복 없이 태어난 걸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냥. 근데 나도 못 끌어안은 나를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그 사람이...
#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보며 혜자가 말한다.
허무하지? 사는 게 별게 아닌가? 78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 난 말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 더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마는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두 니가, 니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 그리고 사람들이 펑펑 울었다는 마지막 대사이다.
내 삶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한 생이 가고나면 기억으로만 남는 인생이다. 마지막에 이르러야 삶의 허망함을 알게 된다. 그 때 집착했던 것들이 부질없음도 알게 된다. 그 때의 감정이 별 것도 아니었음을, 참으로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걸 미리 아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마음수련 명상은 자기가 이미 죽고 없다는 가정 하에 생을 돌아보고 버린다. 이것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가 힘들 뿐, 이 전제가 인정되면 삶을 바라보는 지혜가 생긴다. 자기 입장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혜자의 모든 깨우침은 눈을 감고 돌아보며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눈을 뜨고 새로운 날과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수있다. 아마도 오로라처럼 에러라 할지라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