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분이 명상을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무슨 명상을, 어떻게 하시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책 보고 명상을 했거든요. 그것도 혼자서. 알아서 잘하시겠지 믿으면서도 염려가 아니 되는 건 아니라서. 제 경험을 얘기하면 불편하실까? 생각도 들지만 몇 자 써봐요.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 여하튼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오지랖일까요?
우선 제가 경험한 마음수련 명상 효과부터 말씀드릴게요. 명상을 해서 건강이 좋아지고,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집중력이 좋아진다, 많이 들으셨겠죠. 저는 이런 면도 있더라는 얘길 해보려고 해요.
쉬울 것 같죠? 아니,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생각해요. 대부분 밥 먹을 때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번뇌와 잡념에 빠져있거나, 핸드폰에 정신을 팔고 있거나, 아니면 '빨리 밥 먹고, 가서 커피 마시고, 그다음에 숙제하고... ' 그런 생각이라도 하더라는 겁니다. 뇌가 항상 과거가 아니면 미래에 붙어 있었어요.
현재를 살아라, 이 순간을 살아라, 카르페 디엠 등등 말은 쉽게 합니다만. 사실 희망사항이죠. 그렇게 되려면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해요. 첫째, 과거에서 벗어나야 하고 둘째,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잘 아시겠지만 밥 먹을 때 밥만 먹는다는 건 현재를, 이 순간을 산다는 말이죠.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은 축복의 순간입니다. 누구라도 가끔은 경험하시잖아요.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인생이 아름다웠어요. 가끔은 깊이 숨만 쉬어도 부족할 것 없는 충만감이 있었죠. 저희 어머니도 일생 동안 몇 초 정도는 정신을 차렸던 것 같아요. 아주 가끔 "그래, 더 바랄게 뭐가 있겠노." 하셨죠. 그때뿐이었지만요. 그 시간이 길어지길 바란다면, 항상 정신 차리고 살고 싶다면 걸림돌이 되는 마음이 버려져야 하겠죠.
저도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가끔가끔 정신 차리는데요. 그 순간은 세상이 달리 보였어요. 오로지 이 순간에 존재할 때는 밥을 먹어도 나물 반찬 한 가지, 국 하나, 김치 하나가 너무 고맙고 경이로운 겁니다. 일할 때도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살아있음이 너무 고마워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돼요. 이게 천국이구나 싶을 만큼 충만한데, 그보다 감격스러운 것은 내가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산다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늘 이렇게 각성되면 곤란하겠죠. 항상 상기 상태가 되면 병원 보내야죠. ㅎㅎ 웃자고 한 얘기고요. 이치를 알았다면 그다음 할 일은 이것이죠. 잔잔하고 담담하게 익어가는 일, 이 순간의 가치와 무게를 알고 깊어지는 일. 깊어진 만큼 돌아봐야 할 자기가 있고, 버려야 할 자기가 있었어요.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죠.
인간관계, 정말 복잡하고 어렵죠. 명상 초기에는 미운 사람이 있으면 미운 마음을 버리고,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슬리는 마음을 버리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은 마음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벗어난 것 같다 싶고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사람을 마주하면 내 마음 같지가 않은 겁니다. 또 뒤집어지고, 또 뒤집어지고. 사람은 끊임없는 숙제거리였죠.
사람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사람 때문에 세상 등지고 싶었고,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사람 없는 곳에 살고도 싶었습니다. 좋은 사람은 드문데 꼴 보기 싫은 사람은 왜 그리도 많았는지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건 나의 문제라고 인정하게 되더군요. 시간이 흐를수록 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응당 이렇게 해야지' '이래야 맞는 거 아냐?' '나는 너한테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그러는 건데?' ' 나도 잘했다는 건 아냐.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삐지는 이유는 주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채워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돌아서고 그렀더라고요. 항상 제 생각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돌아보니 부모 형제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바라고만 살았더군요. 제가 그들을 위해 한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너무나 이기적인 삶이었죠. 이기적인 사람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제가 그 사람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싫어하는 A 가 있었습니다. 약간의 경멸도 있었어요. '쟤는 정말 자기밖에 모르고, 털끝만큼도 손해 보는 거 싫어하고, 뭐든 자기가 통제하려들고.. 난 저 인간하고는 일 못한다. 상종을 하지 말자.' 그런 마음을 품고 A를 대했습니다. 적당히 웃으며 지내고 어지간하면 거리를 뒀죠. 그런데 저도 A와 똑같은 마음으로 지지 않으려고, 손해 보기 싫어서 애쓰며 버티고 있다는 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옛말이 딱 맞았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 거죠.
저를 돌아보고, 명상으로 깨달은 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기 싫으면 또 저를 돌아봤고요. 과일 하나라도 뭐든 주고 베푸는 노력부터 시작했습니다. A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같이 하자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맛있는 건 저 혼자 먹고, 득 되는 일도 저 혼자 살짝 했을 텐데. 저에게도 무척 낯설고 생경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죠.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 적이 없었고,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본 적도 없었구나. 잘못된 사람은 100% 저였습니다. 그걸 돌아보고 고칠 수 있게 해 준 건 A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변하는 것도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었어요. 세상에서 제일 귀찮고 성가시고 하기 싫었던 말, '함께'가 정답이었죠. 함께 해야 뭐든 이룰 수 있고, 함께 살아야 정말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저는 길치인데요. 30년 넘게 운전을 해도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골목을 한 번 잘못 들면 몇 번을 도는지, 시골 국도에서 300m를 가늠하지 못해 다른 길로 빠져 낭패를 볼 때도 있었죠. 내비게이션이 눈앞에 있어도 시키는 대로 못 가는 것이 저였습니다. 길도 인생도 인간관계도 한 번 꼬이면 복잡해졌습니다. 내비게이션 하고도 어긋나는데 사람하고는 오죽했겠어요.
삶의 습성은 명상을 할 때도 꼭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CCTV 돌려 보듯이 훤하게 볼 수 있었죠. 잘못 가면 다시 돌아가고, 많이 헤매면 원점에서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지금도 문제 투성이고 실수 투성이지만 두려움은 없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제 안에 있고, 돌아보려는 마음이 있으면 돌아봐진다는 것도 알았으니까요. 마음수련 명상 효과,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