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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부작용이 약이 되었다

by 냉이꽃


마음을 버리면 마냥 좋기만 할까? 그럴 리가. 마음수련 부작용도 있다. 사실 부작용이란 내면의 불균형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청소를 하면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청소를 끝내면 깨끗한 방을 되찾을 수 있다. 먼지는 필연이고 잠깐의 불편함이다.


이 글은 마음을 버리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담이다. 먼지가 일어나듯이 마음도 일어나고, 인간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를 깊이 돌아볼 수 있었고, 내가 달라지면 아름다운 동행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작용은 몸에 좋은 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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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사람 잡더라


마음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인생을 꿈꾸었다. 내 인생에 몰두해 있다 보니 주변에는 무관심했다.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불편한 사람은 무시하거나 피했다. 나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배려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 코가 석자였다.


오직 나를 위해 마음을 버리다 보니 버린 만큼 내 마음은 편해졌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 얽히면 뭔가 엇박자가 생기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마음 좀 닦았다고 남을 지적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완전 밥맛, 재수탱이, 진상짓을 하면서도 나는 몰랐다. 나는 바른말을 해줬는데 상대가 못 알아듣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엇박자는 더욱더 꼬였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딱 내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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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질러진 물


어느 날이었다. 40쯤 되어 보이는 분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분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세상에 이게 말이 돼요? 이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따졌거든요. 제 말이 틀렸냐요?' 대충 그런 얘기였다. 이 분은 화가 덜 풀렸다. 그리고 '당신 말이 맞다. 그 사람이 백번 잘못했다.'는 말이 필요했다.


마음수련 부작용이 일어났다. 어설픈 약국이 사람 죽인다고 내가 그랬다. 무슨 말이든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앞뒤 분간 없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선생님, 그건 그 사람이 풀어야 할 숙제고요, 선생님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세요.'


대화는 대충 무난하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야단이 났다.

"그럴 줄 몰랐어요. 언니처럼 푸근하고 해서 들어주고 위로해 줄 줄 알았어요. 어떻게 아픈 곳을 그렇게 콕콕 찌르고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시아버지 병 수발도 제가 다 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터진 화산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분은 정말 서운하고 분했던 것 같다. 두 번 다시 안 보겠다는 듯이 홱 돌아서 가버렸다. 말릴 수도 없었다. 나는 그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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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부작용은 몸에 쓴 약이었다


자기 성찰은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너 자신을 알라 그것만 가르쳤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사람은 자기를 돌아보기 싫어하고, 자기 관념을 바꾸기 싫어하며, 자기를 지키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나마 스스로 성찰할 때는 뭔가 깊은 사고를 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만족감도 있었다. 이게 위험했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돌아볼 때는 함정이 많다. 자신에게 관대하며 교묘하게 합리화를 한다. 그 이상은 볼 수 없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듣는 것이 필요했다. 나도 말은 이렇게 쉽게 한다만. 막상 남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당황스러웠다. 얼른 인정도 되지 않았다. 섭섭하기도 했다. 그게 아니고, 그렇긴 한데... 변명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한참 흘러야 충고가 인정되었다.


딱히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사람과 삐걱거리는 일이 생기면 마음이 괴롭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무감각했다면 어땠을까.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나는 나의 허물을 들추지 않았을 것이다. 불편함, 아픔, 슬픔은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무시하고 살 수 없도록 만든 신의 장치라 느껴졌다. 사람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 같았다.


마음수련 하면서 나는 인생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물론 매우 미숙하고 서툴다. 실수도 하고 후회도 많이 한다. 모르고 지나가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수련 부작용을 겪으면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조금씩 바뀔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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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부작용을 겪은 후 인간관계를 되돌아봤다


마음을 비우다 보면 싸우고 부딪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나는 참았으면 참았지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수련 하다가 성격이 변했다며 우기기도 했다. 그러나 깊이 돌아보면 알게 된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부딪침이 있었는지, 나의 공격성을 얼마나 억누르고 참고 살았는지. 드러나기 전에는 모른다.


그날 나는 화난 사람의 화를 더 돋워버렸다. 생각하면 엄마와 싸울 때도 그랬다. 마음수련 부작용이 아니다. 나는 평소에 그렇게 살고 있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뭘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걸까? 왜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싫을까. 왜 이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어떤 사람 앞에서는 참지 않고 내뱉고, 또 가르치려 드는 걸까. 서로가 별생각 없이 약간의 기대를 했고, 그 기대가 어그러졌을 뿐인데 왜 상처투성이로 끝이 났을까.


첫째는 사람의 마음이 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이건 마음수련 첫 시간부터 듣는 강의 내용이다. 들을 때는 아~ 맞아! 하지만 돌아서면 다 잊어버린다. 왜 내 말을 못알아듣고 이해를 못하냐고 원망하게 된다.


둘째, 어느 한 사람이라도 먼저 자기를 돌아보기 시작해야 한다. 마음 닦으러 와서 상처도 받고, 등도 돌리고 원수도 되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속이 상한 중에도 자기를 돌아본 사람은 크게 성장한다. 나도 그런 과정을 무수히 경험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우기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머문다는 것은 앞으로도 같은 패턴으로 살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 부작용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없는 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탈이 나야 식단도 바꾸고 운동도 하여 큰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다. 또 고름을 짜내려면 아픔도 있고 아물 때까지 시간도 필요하다. 이 과정이 두려워서 건강을 포기하는 바보는 없다. 마음의 부작용이 드러나야 깊이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짜 평화가 버려진 만큼 진짜 평화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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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면 실천해야지


등잔 밑이 어두웠다. 항상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나를 못 봤던 것이다. 나의 인간관계는 졸렬하고 쪼잔했다. 나에게 불리하면 관계가 뜸해지고,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등을 돌렸다. 조금만 마음을 다쳐도 얼른 피하고, 작은 오해를 오래 마음에 품으며 키우기도 했다. 지나가는 말 한 미디, 스치는 표정 하나, 작은 행동 하나에 좋았다 싫었다 변덕을 부렸다. 참으로 가볍고 얄팍한 인간관계였다. 나만 그랬을까? 사람은 대개 그러고 사는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기준이 이해득실에 있었다.


나의 인간됨을 돌아보다 보니 부끄러운 게 많았다. 어느 저녁나절, 함께 명상하던 H에게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오늘 너를 보려고 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를 순수하게 만난 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었다. 항상 목적을 가지고 만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를 만나면 배울 게 있고, 뭔가를 얻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냥 만나서 반갑고. 가볍게 헤어지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이 필요하면 친구로서 그냥 도와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니가 미울 때도 있었는데 얻을 게 있으니까 기분이 엉망진창이라도 꾹 참았던 것 같다.

너의 좋은 점을 배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결국은 남들에게 괜찮게 보이고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H는 묵묵히 들었다. 나도 그렇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깊은 한숨처럼 말했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인정받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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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면 하나를 벗고 나니 짐을 벗게 되어 홀가분했다. H와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바람결 같았다. 좋고 싫고도 없이 무던했다. 변함이 없고, 가리는 얘기도 별로 없었다.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눈물겨웠다. 언제 어떤 누구를 이런 마음으로 만난 적이 있었나 싶어서다.


춘풍추상 春風秋霜이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다. 남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은 가을 서릿발처럼 엄하게 대하라는 말이다. 그때 나와 부딪쳤던 분도 그저 자기감정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춘풍추상이라는 말을 거꾸로 배운 내가 그걸 망친 것이다. 나의 성급한 말 때문에 마음수련 부작용을 겪게 된 분께 죄송할 따름이다. 그냥 들었어야 했고, 충분하게 들었어야 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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