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 뜻, AI 말고 나에게 물었다

by 냉이꽃


모르겠어요. 마음수련 뜻이 뭔지.

저는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질끈 묶은 긴 생머리가 보기 좋은 30대 MZ였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의 문제다. 오리무중에 빠지는 시간이 없을 리 없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마구 흩트리더니 나를 봤다. 무슨 말이든 좀 해보라는 듯이. 나는 그녀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꿰다 만 구슬처럼 단어와 단어가 널브러져 있었다. 목구멍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마음수련 뜻도 냉큼 말하지 못하는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돌아봤다. 진정 나에게는 마음수련이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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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물었다. "마음수련 뜻이 뭔가요?"


무료버전 AI는 청산유수같이 대답했다. 인터넷 자료를 기반으로 했지만 신기하게도 자기의 언어라고 느껴졌다. 다음은 AI가 정리한 원문이다. 많이 줄였다.


1. 마음수련은 "내가 마음이라고 믿고 살아온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훈련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생각, 감정, 기억, 성격, 고정된 자아 이미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마음으로 만든 세계'를 실제라고 믿고 산다. 마음수련은 그 가짜세계를 비워 진짜 세계를 회복하는 훈련이라고 정의했다.


2. 마음수련의 목표는 내가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평온한 마음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 채우지 않아도 편안하고,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으며, 나라는 틀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는 것이다.


3. 마음수련의 특성은 경험을 통해 이해되는 명상이라는 점이다. 마음수련은 철학이나 이론이 아니고, 책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말로 공감하는 것도 아니고, 가라앉히는 것도 아니고, 잠깐의 위로도 아니다.


영 틀린 말도 아니고 크게 비켜간 설명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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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에게 마음수련은 무슨 뜻일까?"


나에게 마음수련은 어떤 것이었을까? 처음에는 나를 괴롭히던 마음이기에 물 만난 고기처럼 버렸다. 버린 만큼 몰랐던 것을 깨달아서 즐거웠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나 혼자는 좋았다. 그러나 사람들과는 계속 삐걱거렸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하고 즐거워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피해 입지 않으려고 도사리고,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는 나와는 사는 세상이 달랐다. 좀스럽고 지질한 나는 어중간하게 마음 닦은 소인배같았다.


자기 자신을 거울처럼 볼 수 있다면 굳이 명상을 할 필요도 없을 거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손에 쥔 떡이 더 크게 보이는 나의 눈이었다. 성인도 자기의 그름을 모른다는데 오죽할까.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어려웠다. 니체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가가 자신이라고 말을 했다. 나의 판단과 신념이 무너지고, 나의 가려진 모습을 보기 시작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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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린다, 비운다, 내려놓는다'의 뜻


꽤 알려진 시인이 사형수로 복역하면서 쓴 글을 읽었다. 철커덩 소리가 나면 한 목숨이 사라지는 하루하루였다. 죽음의 공포는 죽어야 끝이 났다. 시인과 함께 복역 중이던 한 많고 죄 많은 사형수가 있었다. 그는 시인에게 약속했다. 봄이 오면 꼭, 비누곽에 민들레꽃을 심어 주겠다고.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의로운 일을 하고 싶다 했다. 그러나 봄이 오기도 전에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임종이 가까우면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 험하게 살았던 사형수도 죽음 앞에서 비로소 지난 삶을 후회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의로운 일을 하고 싶었고, 비누곽에 민들레를 심어 시인의 손에 몰래 쥐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더 이상 허락된 삶은 없었다.


그래서 마음수련은 살아있을 때 먼저 버림을 배우라 한다. 배움보다 안 배움을, 삶보다 안 삶을, 가짐보다 안 가짐을, 만남보다 떠남을 배우라 한다. 모든 것에는 기회가 있고, 삶은 내 바람대로 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가득 찬 것에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다. 그릇이 비워져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 이것이 마음을 버리는 1차적 이유다. 편안해지고 불면증이 없어지고 등등은 그냥 따라오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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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이란 무엇일까?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눈 뜬 오늘 하루는 어떤 것일까?

비움이란 무소유의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니다. 허무와 염세는 더더욱 아니다. 버림이란 악몽에서 깨어난 아침처럼 꿈은 허상이고 없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주어진 하루가 영원 같은 행복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지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것이다. 천국이 따로 있나. 거기가 천국이 아니겠는가 이 말이다.


오랜 세월 명상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바라는 행복이 분명히 있었다. 그걸 붙잡으려고 노력하고 집착했다. 그러나 이루어지고 나면 기대했던 행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내가 소망한 행복은 궁극의 행복이 아니었다. 나의 욕망과 집착이 버려지면 서서히 알게 된다. 행복은 이미 주어져 있었다. 그것은 변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두터운 내 마음에 가려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꿈에서 미망에서 깨어나라는 것이다.


마음 하나가 달라지면 하늘도 처음 보는 하늘이고, 처음 숨 쉬는 공기고, 처음 만끽하는 햇살이다. 남을 미워하고 자기를 괴롭히기에 이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빈곤한 마음으로 팍팍하게 살기에는 이미 너무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철없이 좋아 날뛰는 기쁨도 아니었다. 나를 내려놓아야 보이는 내 모습이 있었다. 시비하고 함부로 판단했던 사람들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나였다.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버리려는 노력조차도 엄청난 이기심과 욕망이었다. 그런 나를 내려놓으며 강가의 조약돌처럼 모난 마음이 깎였다. 행패 부리듯 타인에게 부렸던 나의 편견과 고집. 이걸 버려 자유로워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마음수련의 뜻은 리셋, 리메이크다. 이것이 나를 돌아보고, 마음 빼기 명상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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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를 마주한다는 말의 뜻



나를 마주하는 것, 자기를 돌아보는 것, 자기 성찰은 마음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어떤 가시가 어디에 박혔는지 모르면 가시를 뽑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현주소를 모르면 마음 빼기 명상도 길을 잃게 된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길을 잃은 적도 없다. 헤매고 돌고 돌아 찾아든 나의 길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헤매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사람은 누구나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한다. 일기를 쓰며, 여행길에서, 혹은 잠들기 전 이불킥을 하면서. 나를 마주한다는 말은 그런 자기반성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똑같이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아도 마음이 대구를 향해 있으면 대구가 끝이고, 서울을 향해 있으면 서울에 도착해야 끝이 난다.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기준이 서울이라는 말은 자기를 마주하는 마음이 근본에 닿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 이건 마음수련을 직접 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것도 진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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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 정준희 교수가 무사유 (thoughlessness)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다. 無思惟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깨어있지 않은 상태, 의식이 잠든 상태'를 말한다.


정교수는 대형 산불은 대부분 방화가 아닌 '생각 없는 실화'에서 나온다고 했다. 많은 경우 제대로 끄지 않은 담배, 평소 하듯이 뒷마당에서 태운 불씨가 산을 태웠다는 거다. 무사유는 광기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닌 '극단적인 생각 없음'이다. 동시에 광기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 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뭐 그런 거다.


나를 돌아보면서 나의 무사유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라캉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라 하지 않았던가. 부러움과 시기질투, 경쟁과 열등감이 나를 움직이는 것들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가고, 편향에 휩쓸리고, 생각 없이 평생 살던 대로 살고, 양잿물이라도 공짜면 덥석 받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내 판단이 옳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습관이 된 마음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습관이니까.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같은 행동을 하고,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내 몸이고 내 인생이고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바꿔지지도 않았다. 경험상 장담하건대 마음수련 명상이 아니면 해결하기 힘든 영역이라 생각한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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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성찰, 매일의 감사


명상을 요즘처럼 겸허한 마음으로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버렸던 25년, 좌절과 순간의 기쁨과 벅찬 행복마저도 길 위에 있었던 여정이었다. 때로 비바람 불고 때로 순풍에 꽃도 피었다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님처럼 나를 마주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필연이었고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마음수련 뜻, AI는 단 1-2분에 정리해 내는 것을 나는 25년이 걸렸고, 이 글도 긴 시간을 들여 썼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이 쉽다고 말하지 않겠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이 어려움을 기꺼이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나처럼 욕심 많고 억센 인간도 달라지니까.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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