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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담자 P May 20. 2020

비 오는 출근길이 알려준 마음돌봄의 비법

#자작시 #시쓰기 #초보작가

톡톡 톡

아침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


비가 오니까 도로가 미끄러울 거야
차가 달리는 속도도 느려지고 버스도 밀릴 테지
그러니까 조금 일찍 나가는 게 좋겠어

물기 어린 길을 찰박찰박 걸으며
여유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고
어쩌면 버스에서 십 분은 더 잘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아서
오늘은 십 분쯤 일찍 집을 나섰어
그렇게 비 오는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해



이상하지
예전엔 아침에 비가 오면 짜증부터 났거든

대체 왜 내가 출근할 때 비가 오는 거지?
어쨌든 난 평소 나가던 시간에 나갈 거야
비가 온다고 해서 괜히 서두르고 싶진 않다구

차들은 다급한 내 맘도 모른 채 느릿느릿 기어가
터널 속에서 버스는 한참을 오도가도 못해
나는 여기 멈췄는데 얄밉게 시곗바늘만 계속 움직여

시간이 갈수록 조급함은 짜증으로 바뀌고
내 뜻대로 안 되는 모든 게 화가 나고 속상해
아침부터 엉망진창이야! 왜 난 항상 이런 식이야?



아보면
비 오는 날이랑 우울한 날이 되게 비슷하더라


비는 언제든지 내릴 수도 있는 거고
비 내리는 날은 차들이 느려지는 게 당연하지
그러니까 조금 더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해

때로는 마음이 우울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날은 몸도 축 처져서 힘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해
그러니까 조금 더 내 맘을 돌보며 천천히 가야지

하늘도, 마음도 항상 맑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말해보자
비가 오는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오늘 유난히 무기력하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동안은

하늘도 마음도 내 뜻대로 되길 바랐어


뭐 하나라도 수틀리면 짜증이 불쑥 올라왔고

한번 열이 오르고 나면 쉬이 가라앉질 않더라

매일매일이 왜 그렇게 힘든 걸까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네


느릿느릿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오늘 이 시를 썼어

비가 와서 그런가 어쩐지 오늘 기분이 꾸물꾸물해

그런 김에 오늘은 나를 좀 챙겨 보려고 해


네 지갑 사정에 마카롱이 웬 말이냐며 지나쳤는데

한 입 거리 사치인 걸 알지만 오늘은 좀 먹어보지 뭐

이런 날의 너에게는 달콤한 평안이 필요하니까







수용, 조절, 마음 돌봄.

용어로 들을 땐 세상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던 게

'비가 오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오늘은 조금 일찍 나가볼까?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오늘은 마카롱 먹는 날 하자'

이렇게 정리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여전히 시는 짧게 잘 안 써진다.

하고픈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줄여?

이 개념을 저 정도로 줄인 것도 나는 많이 애쓴 거니까, 괜찮아. 저대로도 좋아!


무엇보다, 오늘 아침의 깨달음이 너무 감사해서 짧게는 도저히 못 쓰겠다구.


똑같은 '비 내리는 출근길'인데 오늘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예전의 너는, 비 내리는 출근길을 정말로 싫어했었잖아.


그때는 모든 걸 날씨 탓으로 돌렸는데,

사실은 '내 마음'이 가장 중요했던 거 아닐까?


(앨버트 엘리스 박사,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퇴장. 페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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