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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Oct 11. 2020

엄마라는 함정

감정에 솔직한 게 이기적이라고?

시어머니는 6년 전 돌아가셨다.  자식 걱정에 잠못이루며 웃는 날 보다 우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걱정이 많은 분이셨다.  혼자된 시아버지는 올해 여든여덟이시다. 시어머니는 아버님 흉을 자주 보곤했었다. "저 늙은이는 이기적이라 자기밖에 몰라.  걱정 없이 잠도 잘 자고 혼자 즐겁게 사니 100살까지는 거뜬히 살 거야"  나는 결혼 후 이 말을 애창곡 후렴구처럼 자주 들었지만 이 집안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남편과 그의 남매들은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관념이 사상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잘못된 신념은 삼 남매를 평생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게 한 채로 살게 했다.  말에는 생명이 있다. 특히 '엄마' 란 존재의 말은 힘이 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6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며 알게 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의 렌즈를 통해 왜곡되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감정이 의지를 앞서기 마련인데 시아버지는 바로 그런 타입이었다. 시아버지는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조금 덜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더 즐겁게 하는 천성을 가진 분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성향을 시어머니는 '이기적'이라고 해석했고 엄마의 그 되뇜이  삼 남매에게 아빠를 그런 사람으로 각인시켜버렸다.


시아버지와 시간을 자주 보내며 그의 본모습을 알게 되자 슬프고 씁쓸했다. 만일 아버님이 본인의 감정을 누르며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좋은 아빠' 그리고 '좋은 남편'으로 여겨졌을까?  결국, 이래도 저래도 불만족스러운  남편으로 비치긴 매 한 가지였을 것 같다. 타인에 대한 해석은 자신의 심리상태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눈에는 이기적으로 비쳤던 시아버지의 모습은 다름 아닌 자기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솔직함이 오히려 며느리를 포함한 타인에게는 신경을 덜 쓰이게 하는 '배려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간과 인간관계의 오묘함이란 끝없는 깨달음과 숙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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