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해결이 아닌 성장을 위한 것
유난히 파란 하늘과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식탁 위에 비친 그 실제의 풍경이 또 한 번 아침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식탁을 덮은 유리 위로 들어앉은 가을 아침. 문득 명경지수를 생각해 보았다.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처럼 잡념과 허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명경지수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탁 위에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이 널려있지 않았기에 찬란한 가을 풍경이 식탁 위에 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요한 물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인간도 자기 내면의 생김대로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내면에 쌓아둔 복잡한 감정과 상처가 많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해도 그것을 아름다움과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우리는 정말로 힘든 순간들을 만나고, 수없이 마음을 다치는 일도 많다.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정적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부정적인 관점을 견고하게 고정시키고 스스로 그 안에 고립되다가 결국 가족이나 친구들과 멀어져 혼자가 되길 원한다. 그만큼 사소한 것에 상처 받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다. "Leave me alone!"
자본주의적 가난이 '돈'에 의해 좌우된다면 심리적 가난은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상처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되어 긍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자신과 주변인을 전염시키는 균이 되어 전염병처럼 부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바라보는 고정된 관점이 어떠한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관점이 부정적이라면 틀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한번 생긴 상처가 없었던 일로 되진 않지만, 본인이 부여한 고정돼있던 의미가 변한다면 상황은 같을지라도 행복과 자유는 자신에게 점점 더 가까워진다. 상처는 해결이 아닌 성장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성장할수록 농구공처럼 컸던 문제가 탁구공처럼 작게 다가와진다.
무언가 강렬한 바람이 무너졌을 때 아주 큰 불안이 밀려오는가? 왜 그렇게 불안할까? 그 감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불안은 마음속에 꽁꽁 숨기고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의 이유를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살살 달래서 조심히 불러내야 한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잘날 척으로, 성실로, 책임감으로 혹은 허세나 핑계로 도망 다니던 불안한 감정을 불러냈다면 타인의 삶을 자기에게 reflection 시키던 패턴을, 스스로 의미를 발견해서 자신의 내면에 reflection 시켜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오로지 그것 만이 너의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