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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Jan 15. 2021

시간의 창조물

생긴 대로 내버려 둘 수록 아름다운 것 | 공감

브런치에 올린 글 하나가 삭제되는 일이 며칠 전 일어났다.  에피소드 하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나름 상당한 공을 들이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가다듬고 매만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호흡하기 때문에 적잖이 정도 든다. 하지만 홀연 듯 사라진 글의 기억을 더듬어 비슷하게나마 다시 쓰고 싶진 않았다. 허탈감에 며칠간 글이 써지지 않기도 했다.  마음에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더니, 글 쓸 마음이 없으니 소재 또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글쓴이의 생각과 에너지가 구독하신 분들의 마음 어딘가에 스며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딛고 성찰이 올라왔고, 성찰은 딸의 마음으로 옮겨갔다.  딸은 대학 수험생이다.  나는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코로나 이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정성껏 밥을 해 먹이고 있다.  음식을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주문을 외운다.  "영양가야 oo의 뼈와 살로 골고루 잘 퍼져가거라~~"  그리고 믿는다.  음식은 시간과 공을 들인 나의 창조물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딸아이는 그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창조물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며 혼자서 입시를 준비하는 딸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밥도 용돈도 아닌 스트레스에 눌린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공감해 줄수록 나보다 덩치가 큰 아이의 반응은 퇴행이었다. (이는 참으로 좋은 싸인이다.  공감이 잘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는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나이로 돌아가 그에 맞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너무 힘든 나머지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 딸은 "으앙~~ 너무너무 힘들어.  나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갈래~"  내지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맘에 어릴 적 재미나게 놀던 사진들을 훑어보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절에 가겠다면 절을 데려갔고, 머리를 깎겠다면 미장원도 데리고 갔다. 담배에 호기심을 보이면 핑크색 예쁜 라이터와 담배를 사다 줬고, 술을 마셔보고 싶다면 모든 종류의 알코올을 맛 볼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그 시간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함께 했다.  욕구는 극히 인간적이고 건강한 모습이니까.  


그렇게 과거와 현실을 그리고 약간의 삐딱한 탈선의 코스프레를 왔다 갔다 하며 엄마라는 쿠션 안에서 점프를 했다 안겼다를 반복하며 딸은 성장해갔다.


사춘기를 지나 청소년기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자식을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공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공감해주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정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에너지를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의 대상이 없다면 아이들은 자기의 에너지를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 쓴다. 누군가에게 공감받고자 함은 극히 당연한 행위이다.  하지만 남을 위해 에너지를 쓴다는 건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신과 싸워봐야 자기 인생을 살아낼 힘이 생긴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청소년기에 자신과의 싸움에 에너지를 쏟고 스스로 그 싸움에서 이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을 수 없을뿐더러 굳이 남을 이기려는 콤플렉스로 남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식이란 부모의 공감이 켜켜이 쌓여 형성되어가는 세상에 하나뿐인 시간의 창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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