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80년대 포크송 가수 '시인과 촌장'이 노래한 '가시나무 새'의 가사이다. 이미 첫 소절에 가슴 저미는 슬픔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저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문이 든다. 마음속에 가시를 세우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자신도 아프게하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속에 가시나무가 뿌리내린 줄 몰랐으니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 가시나무도 무성히 자랄 수밖에.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마음에 뿌려진 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밝은 해바라기나 예쁜 동백나무일 수도 있지만 가시나무 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속에 무엇이 뿌려졌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남을 대하는 태도나 말투는 어떤지 스스로 객관적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신경질 내는 부모를 만나면 아이는 신경질을 먼저 배운다. 강박적 부모에겐 강박을, 분노가 있는 부모에겐 분노를 그리고 사랑이 많은 부모에겐 사랑을 배운다. 그것이 내면의 씨앗이 된다. 그 씨앗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부모나 타인에 의해 심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스스로 힘을 내 뽑아 버릴 수도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존본능이 강한 인간은 그렇게 약하지도 않다. 종교인들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변화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신과 동행할 수는 있어도 변화는 본인의 의지와 행동이 따라 줘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의 매커니즘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개선해 보려 노력해도 변화는 미비할 수 있다.
인간의 'soul'은 너무도 섬세하고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교과서적 이론으로 'soul'은 움직여 지지 않는다. 마음이 녹아야 깨달음에 이르고, 그 깨달음에 따라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뀐 후에야 삶이 달라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 꽁꽁 얼어있는 마음은 어떻게 녹여야 할까? 마음이 무엇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찾아보자. 밝고 환한 꽃나무라면 마음이 얼어 있을 리가 없을 것이고, 가시나무라면 비 바람이 불때마다 가시에 찔릴테니 마음을 얼려버렸을 것이다.
종교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심리학 이론을 머릿속에 가득 넣고 있어도 마음속에 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면 좋은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시나무라도 꽃나무밭에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꽃나무를 닮아간다.
결국, 곁에 누구를 두고 어떤 환경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내면의 기운은 달라진다. 본인이 심지도 않은 가시나무를 마음속에 끌어안고 살며 자신과 같은 가시나무끼리 부딫히며 아파할 필요가 있을까? 소모적인 내면의 괴로움과 다투기엔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서 있는 곳이 가시나무 밭인 지, 꽃나무 밭인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