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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Feb 11. 2021

오해와 이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사고방식

유난히 기대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부담스러운 만남이 있다. 만남이 즐거우려면 대화의 중심에 공통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화를 이끌어내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기혼 친구들의 모임에서 최근 방송 중인 한 드라마가 대화에 불을 지폈다.  결혼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타인의 결혼생활에 쉽게 자신의 상황을 대입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가 있다. 특히 결혼생활이 뒤틀려 있을 때, 내 것을 드러내기엔 너무 아프니까 남의 결혼생활을 해체하며 위로받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일어난다.  그런데 현실도 아닌 드라마 속의 대상이라니 앞뒤 돌아보고 망설일 필요도 없이 바로 분석과 가치평가가 시작된다.  


'나만 힘든 거 아니지?  우리 집에만 있는 일이 아닌 거지?' 그 위안은 결혼생활에 지친 중년 여성들의 세포를 춤추게 한다.  뭘 어쩌자는 건 아니다.  그저 몇 시간 드라마 속 가상의 대상을 통해 공감하고, 현실에서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날의 모임은 성공적이다.  잠시 드라마 속 인물로 역할을 전환시키고 나면 (displace) 기분도 따라서 전환 (convert)이 되니 말이다.


며칠 후 싱글 친구들 모임이 이어졌다. 맹렬하게 사회활동을 하느라 아직 싱글인 그들은 사회현상이나 로맨틱한 연애에 관심이 많다.  대화 끝에 기혼 친구들과 나눴던 드라마 얘기를 화두로 던졌던 나는 10초 만에 '이상한 여자'가 돼버렸다.  시간 낭비하며 저질 드라마를 본다느니, 아줌마들 때문에 문화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두고도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반응은 그렇게도 달랐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오해와 이해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 (diversity)에 대한 노출 정도와 이해의 폭은 정비례한다. 그리고 이해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너그러워질 수 있다. 자신의 사고방식 안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여지는 카테고리가 많을수록 이해심이 커지고 마음의 평온도 깊어진다.  


모든 것은 변한다.  개인의 행동이 달라고 사회적인 현상이 변하는 것은 쉽지만 사회적인 규범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가정과 제도교육에 의해 몰딩되는 사고방식은 변하기 힘들다. 유연하지 않은 생각 속에 스스로 같혀 살 필요가 없음에도 그 틀을 깨고 나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타고난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유연한 생각은 경험의 흐름에 따라 쌓였다가 해체되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렇게 사람의 생각을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해 주는 것은 외부 자극이다.  배움, 독서, 여행, 영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색다른 환경 등 자신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생각이 멈춰있으면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을 대한다. 생각을 움직이는 경험의 폭이 좁을수록 오해는 무한대로 커지고, 직간접 경험이 많을수록 이해의 폭은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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