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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Mar 10. 2019

반품 안 되는 인생

감정 시리즈 2

잘 살아보고 싶었던 사람.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사람.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사람. 그러나 이러한 선한 욕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조절장애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더 나아가 커다란 억울함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하고 참아야만 했다면 분노조절장애를 넘어 한국 사람만이 걸린다는 '화병'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경악게 한 대한항공 조 씨 모녀의 뉴스를 접하며 처음엔 놀랍다가 그리고 어이없다가 그다음에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왜 동정하냐고 비난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이 그 정도로 사악하게 된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것이기에 안타까운 생각에서 ‘화병'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화병'은 국제 정신의학회에서도 'Korean Hwabyung' (화병)이라는 병명으로 등장한다.  이는 서양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anger control disorder (분노조절장애) 와는 또 다른  한국 사람만이 겪는 고유의 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과 일제 식민지를 겪었다. 그리고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의 도덕규범에 따라 부모 자녀, 형제, 부부의 관계가 상하의 관계로 규정되어 동등함을 주장할 수 없는 문화가 아직도 깊게 남아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양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기도 하는 혼란과 혼돈의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가치와 윤리기준이 없는 단순한 부의 축적으로 신분이 뒤바뀌기도 하는 풍토에서 ‘갑질'이라는 현상도 등장했다.


가정 내에서는 부모로부터의 학대, 배우자의 학대나 외도 등의 일이 있어도  수치심 때문에 선뜻 남에게 털어놓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분노가  마음을 묵직하게 누르니 답답해서 숨쉬기조차 힘들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참음의 미덕으로 억누를수록 '한'은 켜켜이 쌓여간다. 결국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참다가 화병에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쌓인 '한'은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생김새만 닮는 게 아니다.  감정도 대물림된다.  거절당하면 너무 아프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른 대상으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남편에게 거절당한 아내는 남편을 험담함으로써 아이들로부터 잘못된 동질감을 이끌어낸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에게 거절당한 자녀는 집을 떠나 일찍 자기의 가정을 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의식중에  본인의 자녀를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상사에게 거절당하면 직원들끼리는 더 뭉치는가 싶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를 왕따로 거절한다,   이런 회피 행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화병은 '진짜 감정'을 숨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감정을 숨기는 이유는 관계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 들은 상대방과 관계를 잘 하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상대가 싫어할 것 같아 숨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습관이 된다. 심지어 부모가 아주 엄격하다면 더 위축되어 감정을 숨기고 살게 되면서 관계 맺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대로 안될 때 분노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분노 뒤에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섭섭함, 서운함, 아쉬움, 서러움, 슬픔, 답답함, 억울함 등  충족되지 않은 감정들이 있는데 이를 표현하지 못해서 분노와 짜증만 낸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그나마 분노로도 표현할 수 없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냉정함으로 차갑게 돌아선다.  그들의 '관계욕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대한 '진짜 감정'은  '슬픔'이다.  


원인을 알면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는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을 비난한다.  지난날에는 몰라서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간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미래의 중심인 젊은 세대는 달라져야 한다.  마음에서 분노가 올라올 때 잠깐 스스로를 달래놓고 분노 감정을 들여다보자.  감정을 들여다보자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건, 사람, 반려동물을 대하듯 부드럽게 다뤄보자.  귀하고 사랑스러워서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것처럼 내 마음을 관찰해 보자.  그곳에 화가 난 진짜 이유가 있다.  느끼고 표현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할 때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다.  즉,  분노는 진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등장하는 '대체 감정'임을 잊지 말자.  


조 씨는 분명 부모에게 사랑스러운 딸로 받아들여지고 싶었을 것이고, 조 씨의 엄마 이 여사는 남편에게 단 한 명의 사랑받는 아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절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화가 켜켜이 쌓이게 되었고, 그 감정을 다루지 못해서 폭력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모녀.  사랑받지 못한 슬픔이 '분노'에서 '화병'으로 또 그것을 넘어 '정신장애'로까지 치달아야 했던 한 집안의 사례는 그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은 반품이나 교환이 안된다.  불량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절을 당해서 슬픈가?  그러면 차라리 발 뻗고 울면 된다. 자기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도 한 발짝 물러나 바라봐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이것이 성숙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비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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