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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lturing me Mar 23. 2019

'위로'가 될 술을 '독'으로 만든 여자

불안의 파도에 흔적 없이 씻겨나간 사랑

술을 마셔야 진심을 내놓을 줄 아는 소심한 남자에게 여자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술과 친구 그리고 늘 떠남을 갈망하며 바람같이 살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술에 담긴 낭만은  알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드라마를 보며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여자가 만났다.  언뜻 보기에 이 두 사람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의 삶은 맞물리기 힘든 두 개의 톱니바퀴처럼 따로 돌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강하다 한 들 상대를 위해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라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둘은 부부로 살아가면서 비로소 서로가 정말 다르게 생긴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의 장점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인정해 주지 않고 단점은 고쳐보려고 간섭하게 된다.  각자의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는 소모적인 싸움은 결론 없는 감정의 불똥일 뿐이다.


티격태격 일상에서의 부조화 속에서 평범한 결혼생활을 지향하는 여자는 오히려 목소리가 높다.  왜냐하면 여자 스스로 옳은 말을 한다고 믿으니까. 그렇다면 술과 친구 그리고 바람 같은 삶을 갈망하는 남자는 바르지 못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을 하며 살아가기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떠나기를 갈구하던 남자는 도대체 왜 가정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갔을까?  


아마도 남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일정 부분의 개인적 욕구를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바람만 불어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가진 이 남자는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정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가 떠나가고 싶었던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닌 마음의 평안이었을 것이다. 내향적이면서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기대를 감당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가정과 직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늘 어디론가 가고 싶으면서도 누군가가 잡아주길 간절히 원한다. 이  남자는 방랑자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남자가 떠나고 싶은 것은 가정이 아니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오히려 지극히 안정적인 가정의 테두리를 원했을 것이다.  불안한 사람이 갖는 스트레스는 일반 사람의 스트레스와는 강도가 다르다.  눈짓, 말투, 단어, 뉘앙스 및 상황 등 상대의 모든 것을 날카롭게 느끼기 때문에 과도한 책임과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불확실한 일 들까지 걱정하며 머리에 주렁주렁 혹을 달고 살아간다.  매일이 비상사태이다.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는 이 남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자는 자신의 속도로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해 주는 한 잔의 술이 낭만과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자에게 보이는 여자의 태도는 한결같다.  “나랑 보내는 시간보다 술이 더 좋으면 그냥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며 잠시라도 마음에 위안을 받아보려던 시도는 이내 비난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비난을 피해서 다시 술을 찾고 그 속에 빠져버린다.  


술이 주는 위로를 모르는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술 마시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의 위로로 끝낼 수 있는 술이었는데,  현명하지 못했던 여자는 남자를 술 독으로 밀어버렸다.  이내 술은 마음 약한 남자를 쉽게 삼켜버렸다.  술독에 빠져버린 사람은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여자는 남자의 술 마시는 행위보다,  술을 마시고자 하는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안정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잠시 위로를 받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술에 의지하는 것은 극과 극의 상황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남자는 어느 쪽이었을까?


만일 여자가 술 앞에서만 진심을 내놓는 남자의 소심함을 읽고 술 한 잔을 권하며 남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여자의 바람대로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드라마를 함께 보는 시간이 잦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자는 분명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남자가 마시는 술과 씨름하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여자의 마음은 정작 남자의 마음이 바스러질 정도로 타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분명 둘은 사랑했는데 무엇을 사랑한 것일까? 각자의 불안한 마음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두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성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으로 드러내는 삶의 방법이 달랐을 뿐 감추어진 부분은 오히려 너무도 닮아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안정감을 느끼길 바랐을 것이다.   


결국 낭만과 위로가 될 수 있었던 술을 여자는 독으로 만들어버렸다.  때로는 성실한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실수투성이이다.  무지하면 숲을 밀어버리고 공기가 탁하다고 한탄하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경험할 때마다 열심히 정도를 걷는 것 만이 옳게 사는 것이 아니란 걸 느낀다.  


진흙탕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손 내밀어 건져주려 하기보다는, 가끔은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견뎌주는 게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도 한 것 같다. 서로에게 묻은 진흙을 닦아 주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술에게 받는 위로는 하룻밤을 넘기기 힘들지만 사랑이 주는 위로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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