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ulturing me Feb 28. 2019

남자를 아시나요?

현명한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안다.

가깝고도 먼 여자와 남자.

요즘은 길을 가다 보면 유난히 젊은 커플들이 눈에 띈다.   ‘좋을 때다’를 넘어서 ‘좋겠다’는 부러움이 생긴다.  만일 나에게 다시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싱글인 친구들이 꽤 있다. 나에겐 부럽기만 한 싱글들… 일찍 결혼한 나보다  이십여 년을 혼자만의 여유를 누리며 살고 있으니 이제는 더 깊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곧 결혼할 것 같았던 친구가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단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던 공들인 아까운 관계 하나가 깨졌다.  


“잘 만나더니 왜 헤어졌어?”   

“사랑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맘이 변했어.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가 봐”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닫고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이십 대 중반에 우연히 읽게 된 독일 작가의 철학 책이 있었다.  제목은 '남자'  나는 그때  '남자'를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결혼해서 두해 정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남자'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의 저자는 ‘여자’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읽은 순간 머리에 박힌 구절은 내 생각의 일부가 되어 지금까지도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해야 한다. “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구절은 내 결혼생활 동안 사계절이 스물네 번  바뀌는 사이 폭풍이 휘몰아치고, 배가 난파되고, 천둥번개가 쳐댈 때에도 나를 결혼생활 안에 붙잡아준 강한 힘을 준 구절이다.  남자와 여자는 뇌 구조와 마음의 결이 다르다. 남자는 수렵을 통해 존재감을 증명해왔다. 그래서 남자는 모험을 무릅쓰고 탐험하고 성취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한 세계 어딘가에 장미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게 물을 주고 보살피며 만족감을 얻는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여자로 하여금 장미꽃을 심을 수 있게 보호해주고 애정을 준다. 그러다가  여자가 가꾼 장미나무가 꽃을 피울 때쯤이면 남자는 자신을 지켜봐 주고 장미꽃을 가꾸는 여자에게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정감은 남자에게 더 큰 세계를 찾아 나설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남자에게 존재의 의미이자 힘이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여자가  남자의 이런 속성을 이해한다면  상처 받을 게 아니라 오히려 남자를 응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넌 이제 사랑이 식었어.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 하고 선언해 버린다. 이때 떠나려는 남자를 여자가 이해해 주면, 남자는 탐험을 마치고 자기의 안식처로 돌아와 쉰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남자의 영혼은 그 여자를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여자는 무조건 남자에게 맞춰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여자는 자신만의 독립적인 삶을 살면 된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갖지 못하고, 남자를 만나는 순간 남성 의존적이 되어 자신을 책임져 주기 원한다.  여자의 삶을 남자에게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 각자 독립적인 삶을 구축해 간다면 오히려 만족스러운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로맨틱한 사랑만을 원하고 그런 대상을 찾는다면 차라리 드라마 속 배우와 허상의 짝사랑에 빠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자가 자신의 존재를 남자와 동등하게 세우지 못하고 의존할 대상을 찾는다면 그곳에는 만족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 주는 것이 아닐까?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뜨면 봄은 기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