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고 있는거 맞아요?

귀가 거부증

by culturing me

봄철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이삿짐 차가 눈에 띈다. 집단장을 하고 새 둥지를 틀려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희망참이 느껴진다. 이삿짐차 안을 살짝 엿보니 집집마다 자질구레한 세간 박스들이 가득이다. 제삼자의 눈에는 ‘왜 버리지 못했을까?’라고 보이는 것들도 주인에게는 ‘버릴 수 없는 혹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겠지. 오래 쓰던 물건도 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과거에 매어둔 마음을 정리하는 게 어디 쉬우랴.


오늘은 자기도 모르게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새 둥지를 트는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새 집에서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집이라는 공간은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하는 곳이다. 집(가정)을 이루는 최초의 구성원은 부모다. 하지만 무서운 부모가 사는 집에서 자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집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곳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쉴 곳은 어디일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지치고 힘들 때 두 발 뻗고 목놓아 울 수 있는 곳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유년기에 마음 두고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집에서 부모로부터 느낀 첫 감정이 안정감이 아닌 야단맞을지도 모르는 긴장감이라면 밖에서 누굴 만나도 긴장감이 기본 감정으로 늘 따라다니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부모의 작은 야단이나 타인의 사소한 반대 의견도 비난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자기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자라게 된다. 그 결과 자기표현을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책임이 뒤따르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촉각을 세우고 불안함과 초조함에 빠져 있다.

혹은, 집이 너무 싫은 나머지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택한다. 하지만 이는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착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우엔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었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자기 둥지를 떠날 궁리를 한다. 어떤 무의식이 자신을 지배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배우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현실을 힘든 상황으로 과대 포장해서 또다시 도피할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가족이 있음에도 가정밖에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본인이 속한 가정 안에 본인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어디 있을까? 아늑한 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허한 몸과 마음을 누군가 채워주길 기대하며 목적 없이 떠돌 뿐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자신이 어떤지에만 신경 쓰며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 경험을 내면화 시키며 자란다. 자신을 따스하게 받아주는 부모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스스로도 자신을 돌보지 못 한다. 무서운 부모로부터 눈 감고, 귀 막고 도망쳐 온 상태로 살다 보니 신체는 어른이 되었는데, 여전히 남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완벽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무시당한다는 감정은 부모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몸은 다 자라서 어른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과거에 붙잡힌 ‘내면 아이’는 어떻게 현실을 응시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이 과거에서 떠나오지 못했으니 현실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질 테고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만 해도 지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현재를 살라고. 하지만 마음이 과거에 매여있는데 어떻게 현재를 살 수 있을까?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만나러 다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보는 수밖에.

그림/ by Yuna 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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