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전체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난리법석인 가운데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고 계절이 바뀌었다. 걱정과 어수선함으로 TV에 많은 시간을 보내던 중에도 나무들은 새순을 틔우고 꽃 봉오리를 맺더니 폭탄처럼 온 사방에 꽃을 피웠다. 자연은 늘 어김없이 자기 할 일을 해낸다. 봄에 피는 많은 꽃들 중 들장미는 단연 돋보인다. 색깔도 화려하거니와 연한 꽃잎은 갓 태어난 아기의 손바닥처럼 부드럽다. 줄기에 가시마저 없었다면 탐스러움에 홀려 쉽게 꺾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 것 같다. 가시만 없으면 완벽한 아름다움이었겠지만 장미는 가시로 자신을 지키나 보다.
나의 엄마는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런데 가시가 있다. 엄마의 가시는 거리두기이다. 자신을 잘 보호하고 지킬 줄 아는 여인이다. 어릴 적엔 그런 엄마가 냉정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독립적으로 성장했지만, 엄마의 그런 점이 섭섭하기도 했고 아이러니했다. 감성이 풍부한데 냉정하다니. 사업을 하던 엄마는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가시를 세우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안의 어두운 감정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 주기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만난 부모를 자식들은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그저 내가 느끼기에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그야말로 1차원적인 관계이다. 장미꽃잎 같기도 하고 가시 같기도 한 극단적인 엄마의 성격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하고 반문해 보다가도 어느 순간엔 그런가 보다 하며 체념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면 실망도 클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수룩하고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본인의 생각과 마음으로 보고 깨닫지 못하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엄마를 가시 달린 장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나의 부족한 점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된 다음이었다.
모르면 힘들고 알면 쉽다더니, 내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완벽한 엄마를 원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불완전한 인간일수록 상대에게서 온전함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가 보다. 하지만 엄마도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시를 세우고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삶도 쉽지는 않았겠단 생각을 하니 이내 코끗이 찡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본인만이 책임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일지라도 자식이 바라는 온전한 대상이 되어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