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로맨틱한 사랑보다 강하다.

현대인의 결혼생활은 이심 이체

by culturing me


1. 로맨틱한 사랑의 인내심은 짧다.


비 오는 일요일 오전은 특별하다.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이불속에서 뒹굴 수 있는 이 시간은 엄마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푸근하다. 이런 느낌이 안정감일 것이다. 이틀 전, 한 친구가 7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냈다는 소식을 전하며 홀가분하다고 했다.


중독 등 특수한 문제가 있는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이 아닌 이상 외적 관계를 청산하는 이혼이 내면의 평온을 가져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분명 불안정하다. 7년간 함께했던 파트너를 도려낸 것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헤어진 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역사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너무 좋아", "홀가분해"라는 말에서 여유나 자유가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함과 공허함의 짙은 그림자가 읽혔다.


사람은 어떤 대상에게 애를 써가며 마음을 닫아 버릴 때가 가장 아프고 힘들다. 그렇지만 간절히 위로를 구하고 싶은 대상에게 마음을 닫게 만든 이유가 외적인 요인일 뿐, 마음에 조금이라도 사랑이 남아있다면 그 관계는 언제라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다.


사랑은 상대의 슬픔과 허약함에 반응하면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로맨틱한 사랑의 인내심은 상대의 약점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까지만 지속된다. 아마도 상대를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 좋아하는 감정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 하지만 바닥을 들여다볼 정도로 상대를 깊게 알게 되는 결혼생활에서는 아름다운 색깔의 사랑이 유지되기 힘들다. 장님처럼 사랑에 빠졌었더라도 눈을 떠 현실을 보게 되니 말이다.


누구나 안전한 대상 앞에선 숨기고 싶은 무거운 비밀까지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불필요하게 마음을 정제할 필요도 없고, 현명하거나 바른 사람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두서가 없어도, 나약해도, 생각 없이 내뱉어도 상대가 자신을 받아줄 거라는 절대적 믿음이 생길 때가 사랑에 빠진 상태이다. 순식간에 빠져버리는 이 상태가 마음의 눈을 뜬 상태 인지 감은 상태 인지에 따라 진정한 사랑일 수도 망상적 사랑일 수도 있다.


친구는 사랑의 열병에서 빠져나온 것일까? 아니면 고도의 친절하고 현명한 사랑의 단계로 접어들지 못하고 더 깊어지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고 발을 뺀 것일까? 불안정한 사람과 회피하는 사람이 파트너가 된다면 서로 상대방을 괴롭히며 신뢰를 파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2. 부부의 사랑은 상대의 나약함에 공감하는 것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마지막 회를 보면서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허구가 아닌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적나라함이 불편함의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혼생활을 이어온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끊어진 관계라도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더 이상 갖지 말고 혼자서 현실을 마주하라는 웅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이거나 강하지 못할뿐더러 원하는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만족하고 멈추지 않는다. 한없이 나약하지만 이를 감추려 하고, 누군가에게는 버팀목처럼 강한 듯 하지만 돌아서면 기댈 대상을 찾고, 상황에 따라 의리와 배신을 반복한다. 결론은, 홀로서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손을 잡아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또한 홀로 섰을지언정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이가 옆에서 버텨줘야 안심하고 다시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친밀하려는 노력 없이는 관계가 시작되기 힘들다. 하물며 관계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다가 지칠 수도 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정직하기만 할 수 있을까?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둘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불행을 느낄 수도 있다. 불행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 불행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 중의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이다. 흔들리고 무너지는 나약한 부부를 잡아주는 버팀목은 쉽게 깰 수 없는 사회적 규범이자 제도로서의 결혼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험과 안전을 동시에 원하지만 결혼 생활에서 모험과 안전의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혼은 낭만주의자들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지도 않는다.


인간은 나약하고 불완전하고 구제 불능이라는 것에 대해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철저하게 이해함과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에 감정 이입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비로소 결혼생활의 참 맛을 즐길 준비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부부는 정말 신기하게도 둘 중 한 사람만 성장해도 관계가 달라진다.


부부가 '길고 힘든 여정을 함께 하는 일심동체'라는 것은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현실은 '일심동체'보다는 '이심 이체'이니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인내로 만들어낸 부부만의 히스토리는 서로에게 삶의 자신감과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말로 힘들 때 잠시 생각해 보자. 포기가 아닌 쉬어가는 방법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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