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균형을 아는 교류의 미학

나랑 친하지도 않자나

by 중년의 모험가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온 월요일 아침, 책상 위에 놓인 청첩장을 마주하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다른 부서의 후배 직원의 결혼 소식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평소 교류가 잦지 않던 이에게서 받은 청첩장은 어딘가 묘한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림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 깊게 관여하려는 성격은 아니다. 교류 자체를 좋아하지만 얕고 불필요한 인간관계에는 굳이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나의 오랜 태도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나의 결혼을 앞두고 내가 청첩장을 돌렸던 대상도 직속 상사와 가까운 동기처럼 의미 있는 관계로 한정되었다. 누구와도 억지로 깊어지려 하지 않고 나와 결이 맞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는 불필요한 피로를 유발하지 않으며 오히려 건강한 지속성을 갖는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이끄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직원들이 많다 보니 나에게도 일면 편안한 점들이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다 보니 소통의 일방적인 단절이 아니라, 맞지 않는 관계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소통을 이어가는 삶의 태도들로 인해 나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여전히 집단주의 분위기가 강해서 그런지 때로는 필요 이상의 관계 맺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경계를 분명히 하며 살아가는 편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제각각의 자유와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내 삶의 핵심을 잃지 않는다. 개인주의란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면서 가치 있는 교류를 나누는 일이다. 그것은 소외가 아니라, 주관이 명확한 균형 감각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오늘처럼 이렇게 나의 영역이 침입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청첩장을 돌린 친구는 내가 서운해 할까 봐 청첩장을 돌린 걸까? 친분이 없어 민망하기는 하지만 축의금을 수금하려는 생각으로 청첩장을 돌린 걸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무심코 회사 상사들에게 청첩장을 돌린 것일까?

어떤 결론이든 그리 유쾌한 사유는 아닐테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해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경계와 균형의 미학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진심 없는 교류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는 교류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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