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구매의 결말
요즘은 의식적으로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생각하고, 냉장고와 팬트리를 둘러보며 살 물건을 명확히 정리하려고 한다. 물건이 기억의 한계를 넘어가면 메모장에 리스트업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란 게 늘 계획대로만 따라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자 영수증 발급이 가능한 곳이라면 꼭 회원가입을 해두고 전자 영수증을 받아둔다. 종이 영수증을 쓰지 않으니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고, 혹시 구매계획에 없던 물건을 충동적으로 집었을 때 앱을 열어 전자 영수증을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중복 구매를 막아보려 한다.
충동적인 소비 욕구를 누르려 애써도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가끔 충동적으로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새로 산 물건을 테이블 위에 풀어 놓으면, ‘이게 잘한 구매였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세스 고딘의 『린치핀』을 보면, 산업화 이후 자본가들이 값싼 노동력을 길러내는 동시에 소비자를 교육시켜 과잉 생산의 문제를 과잉 소비로 해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을 읽을 때는 고개만 끄덕였는데,
문득 나는 바로 그 ‘무지성 소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도 집에 핸드크림이 다 떨어진 줄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트에 다녀왔더니, 아내가 “우리 집에 선물받은 게 있는데?” 하며 두세 가지 종류의 핸드크림을 꺼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아, 물어보고 살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새 물건을 산다는 작디작은 기쁨이 때로 얼마나 큰 맹점이 되는지 새삼 느꼈다.
구매는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도 있다. 도서관에서 묘하게 끌리는 책을 발견해 뽑아 들었는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거, 읽은 적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보니 몇 달 전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구입해 책장에 꽂아뒀던 바로 그 책이었다.
물건이 중복 구매되어도 언젠가는 쓰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쟁여둘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유통기한이 지난 새 물건들이 창고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걸 보면, ‘언젠가’라는 다짐이 허망한 변명임을 깨닫게 된다.
예전이라면 ‘향이 다르니까, 언젠가 쓰겠지’ 하는 합리화로 물건을 보관했겠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겸심한 이상 이번에는 다르게 행동했다. 용기를 내어 핸드크림과 영수증을 챙겨 매장으로 갔다. 잠깐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직원의 평온한 표정에 안심이 되었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았다는 기쁨이 어두운 감정을 덮어주었다.
미니멀한 삶을 위해 물건을 계획적으로 구매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잘못된 소비가 일어났을 때 즉시 바로잡을 용기를 가지는 것 또한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 가치가 아닐까.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 충동구매 부대와 환불 원정대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 싸움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합리적인 소비자로 성장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