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의 단상
새벽에 출발한 기차가 긴 터널을 통과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동지를 갓 지난 겨울 새벽의 해가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수평선 위에 어렴풋이 걸려 있다. 동남쪽으로 달리는 기차로 인해서 인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해는, 먼지가 뿌옇게 앉은 차창 밖에는 희미한 여명이 몽환적인 막처럼 펼쳐진다.
절판된 책 ‘베가본딩(여행의 기술)’을 중고로 어렵게 구해 읽고 있다 보니, 그저 일상의 연장선 같은 출장길의 열차가 어느새 낯선 나라를 횡단하는 여행 열차처럼 낯설고도 설레게 느껴진다.
문득, 주머니가 가벼워 느리디느린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한나절을 달리던 20대가 떠오른다. 그때와 같은 노선을 지금은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단숨에 가로지르고 있으니, 바뀐 것은 세상의 속도인지, 내 마음의 속도인지 헷갈릴 뿐이다.
낭만으로 가득 차 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바쁜 출장길 한가운데 책 한 권을 꺼내 위안을 삼고 있는 지금을 떠올려 보면, 도리어 그때의 내가 더 부유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더 부유한 것인지 판단이 모호해진다.
한동안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눈이 멀어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무모한 시간들이 있었다.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던 그 시절을 지나, 어느 순간부터는 비교하는 버릇이 조금씩 사라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쥐기 위해 더 빨리 달려가면서, 정작 나를 지탱해 주던 소중한 것들, 이를테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많은 순간들과 내 몸의 건강 같은 것들을 길가에 무심코 던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 섞인 의문이다.
아마 이 짧은 몽상도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까맣게 잊히고 말 것이고, 내 삶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무한궤도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향해 달려가는 이 잠깐의 기차 여행 속에서나마, 아주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고, 지금 여기의 나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