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몸을 만 치유자의 역설
杻陽之山... 其中多旋龜,
其狀如龜而鳥首虺尾,
其名曰旋龜, 其音如判木,
佩之不聾, 可以為底.
"축양산(杻陽之山)에 선구(旋龜)가 많이 사는데, 그 생김새는 거북과 같으나 새의 머리에 독사의 꼬리를 하고 있다. 그 소리는 나무를 쪼개는 소리(判木)와 같으며 이름을 선구라 한다. 이것을 몸에 지니면 귀가 먹지 않고, 발의 굳은살(底)을 고치는 데 쓰인다."
《산해경》 남산경 中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서점에서 현지 언어로 된 책을 한 권씩 사곤 합니다. 광둥에서는 광둥어, 상하이에서는 상하이어 책을 고르며 그 땅의 공기를 문자로 간직하려 하죠. 완전히 현지어로만 된 《산해경》을 샀던 것도 그런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 숙소에 격리되어 무료함을 달래던 어느 날, 저는 묵혀두었던 그 책을 꺼내 옥편을 뒤져가며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한 동물의 이름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몸을 둥글게 말아(旋) 자신을 보호하는 단단한 갑옷을 가진 존재(龜)"
그 뜻을 새기는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며 떠오르는 동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천산갑(Pangolin)이었습니다. 보양식으로 알려져 멸종위기에 처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팬데믹으로 몰아넣은 중간 숙주로 지목되자 비로소 인간의 손길에서 잠시 자유로워졌던 그 비운의 동물 말입니다.
《산해경》은 선구를 '거북의 몸에 새의 머리, 독사의 꼬리'를 가졌다고 묘사합니다. 천산갑의 뾰족한 주둥이와 비늘로 덮인 긴 꼬리를 떠올려 보면, 고대인들의 눈에 이 동물이 얼마나 기괴하면서도 신비롭게 비쳤을지 짐작이 갑니다.
중의학에서 천산갑의 비늘은 '딱딱하게 뭉친 것을 뚫고 소통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약재로 통합니다. 고대 노동자들에게 발바닥 사마귀나 티눈(底)은 걷는 것조차 형벌로 만드는 고통이었지만, 선구(천산갑)의 비늘은 그 막힌 통증을 뚫어주는 신의 처방이었습니다. 고대의 세상에서 그들이 마주한 미지의 선구는, 둥글게 몸을 말아 건네준 '작은 치유의 세계'였습니다.
선구가 낸다는 "나무를 쪼개는 소리"는 어쩌면 천산갑이 단단한 발톱으로 땅을 파고 바위를 긁으며 내는 생존의 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숲속 대지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던 치유자. 그러나 인간은 그들의 치유 능력을 탐내어 그들을 약재로, 식재료로, 그리고 사치스러운 장신구로 소비해 왔습니다.
인류를 격리시킨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선구가 지목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가 아니었을까요? 치유자를 파괴한 대가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격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이제 우리는 《산해경》 속 선구의 기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뒤엉킨 운명을 봅니다.
"험한 길을 걷느라 발바닥이 짓무른 자여, 둥글게 몸을 만 선구를 찾아라.
그의 비늘은 막힌 통증을 뚫어주고, 당신의 고단한 행군을 다시 이어가게 할 것이니.
그러나 기억하라. 치유자의 살점을 탐하는 자, 결국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게 되리라."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