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런 말이었는데......

by 김지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별 뜻 없이 보낸 메시지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리는 그런 날이.


오늘 아침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어제 그 메시지 받았을 때 기분이 좀 그랬어요."


전날, 그녀가 갑자기 연락해서

뭐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TV 보고 있었어요. 어쩐 일이에요?" 하고친절한 말투로 답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장난스럽게

TV 아이콘과 함께 "보는 중"이라고 보냈다.


사실 나는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녀도 농담으로 이런 나를 놀리듯이 "참 범생이댜..." 하며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늘 진지하고, 늘 다큐인생이라고...

그래서 가끔 엉뚱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한

그녀의 유머를 정말 좋아했다.

엉뚱하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날은 뭔가 심심하던 차에

제 원래 스타일과는 다르게,

그녀처럼 한번 재미있게 답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걸렸다는 거다.


"항상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 같고,

바쁜 사람에게 자꾸 연락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메시지를 보니 마치 의무적으로

답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놀라운 건, 사실 최근 들어 저는

그녀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 편하고 좋았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일을 함께 하는 동료로서

서로 믿는 사이였다면,

지금은 오랜 친구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상황에서도

저보다 더 씩씩하고 유쾌해진 모습이 정말 든든했고,

예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편하고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전달되었다는 거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같은 TV 아이콘이라도,

보내는 사람의 평소 성향과

받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나에게 그 아이콘은 단순했다.

'지금 TV 보고 있어,

편안하게 쉬고 있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평소와 달리

좀 재미있게 해 보려던 나름의 시도였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달랐던 것이다.

그동안 늘 자신이 먼저 연락했던 기억들,

‘혹시 부담스러워하나' 하는 걱정들,

'진짜 반가워하는 걸까' 하는 의문들이

그 작은 아이콘 하나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던 거였다.

그제야 돌아보게 되었다.

정말로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요?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성향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힘들거나 고민이 많을 때

혼자 파묻히는 스타일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털어놓기보다는

혼자 정리하고 삭히고, 그리고 정리가 되면

좀 지나서 공유할 수 있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연락해 주면 고맙다.

상대에 따라 직접 힘든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야기하면서 에너지와 위안을 얻으니까.

하지만 먼저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니,

상대방에게는 '관심이 없나', ‘귀찮아하나' 하는

신호로 읽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침의 작은 해프닝 이후 생각해 봤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결코 지금 이 순간만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을.


TV 아이콘 하나도,

그 뒤에는 지금까지 쌓인 모든 대화들이 있다.

먼저 연락했던 횟수, 답장하는 속도와 방식,

만날 때의 표정과 분위기까지.

그 모든 경험들이 겹겹이 쌓여서

하나의 작은 메시지에도 영향을 준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표현이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그동안의 모든 관계가 담긴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언어의 감도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마음,

그리고 우리 사이에 쌓인 시간들에 따라

예민하게 달라지는 것 같다.


그녀의 솔직함 덕분에 깨달았다.

내 마음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상대방이 서운해한다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보다는

'그렇게 느꼈구나' 하고 먼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을.


이제부터는 가끔 먼저 연락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어때요?" 같은 짧은 메시지라도..

그녀가 느꼈을 그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말들이 있을까요?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렸던 순간들.
혹은 반대로, 상대방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쓸쓸해졌던 경험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우리 사이에 쌓인 모든 시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런 말이.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그런 말들과 그런 날들이 있을 거예요.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