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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Nov 09. 2019

아이와 70일간의 여행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에서 70일 간 살아보기

Arcoris Mont' Kiara, Kuala Lumpur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온 지 한 주가 지났다. 함께 입국했던 남편도 이틀 전 한국으로 돌아갔고 이제 막 25개월에 접어든 3세 아들과 단 둘이 남았다. 생활에 필요한 동선도 눈에 익고 어학원에서 만난 국제학교 학부형들과 점심도 함께 할 만큼 제법 익숙해졌다. 다행스럽게 아이도 이곳 콘도의 경비원, 정원관리사 분들과 매일 아침 등원 길에 인사를 나누고 말레이시안 선생님과 지내는 유치원에 잘 적응했다. 아이의 밝은 성향도 있겠지만, 살아온 시간이 짧은 만큼 어른보다 선입관이나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없기에 이곳에 더 빨리 적응한 것 같다.


AM 9:30 매일 아침 아들이랑 등원길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기에 되도록 나와 같이 아이와 세상 밖으로 여정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추억과 여운이 가득한 감성적인 문구보단 현실적인 이야기를 살아가며 기록하기로 했고 한 주가 지난 오늘 한국에서 챙겨 온 믹스 커피 한 잔 과 함께 하고 있다.


몽키아라 우리집 테라스 풍경


거기 요즘 유행이라면서요?

유행이냐고 묻는다면 맞다. 나 역시 3세 아이를 데리고 거창한 교육 효과와 철학 보단 최근 몇 년간 붐업인 지역이라 한 달 살기 나라 선택의 시간을 줄이고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전에 비해 특히 맘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 많이 소개가 되고 있고,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비해 덜 알려지고 개발이 한창인 조호바루까지 한 달 살기 열풍에 주인공이 되었다. 8년 전, 회사 업무와 박람회 등으로 다녀갔던 이곳의 기억은 사실 지금 한 달 살기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의 유행에 편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내가 다른 엄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수의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의 목적이 아이의 어학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한 달, 혹은 두 달간 단기 거주하는 학생들 중엔 초등학교 저학년이 가장 많이 눈에 뜨인다.  물론 국제학교의 선택에 폭이 넓고 활성화되어있어 엄마와 아이가 장기 거주하는 가족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곳을 왜 선택했냐고 다시 묻는다면, 아이를 갖은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아이가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았다. 16년 직장 생활의 퇴사 기념 대미를 장식한 아이는 나에겐 40 대 노산이라는 트렌디한 타이틀을 부여했고 우리의 결혼 10주년 기념 선물로 태어났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코드가 제법 맞아 단짝 친구처럼 지냈던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었다. 그래서 아이가 생긴 이후의 일상이 더 행복하다가 아닌 전혀 다른 상활에서의 행복이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이 수 배로 늘어났다. 그중 하나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점에 내 나이는 50 세 이다. 하여, 나는 나의 40대를 아들과 세상 밖으로 여행을 다니며 아이와 나에게 행복한 경험을 선물하기로 했다, 두 돌이 지나기까지 남편과 함께 우리는 푸켓, 도쿄, 미야자키, 마닐라, 하와이를 지나 최근 조호바루와 싱가포르까지 총 7회의 가족 여행을 하였다.  


The Kahala Hotel & Resort, Hawaii


대외적인 타이틀만 그럴듯하고 실 생활은 영 신통치 않았던 고된 직장생활을 통해 모은 저축과 고생길이던 잦은 해외 출장으로 쌓인 100만 항공 마일리지 그리고 남편의 지원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7회의 여행을 통해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것 같지만, 여행 가방을 싸기만 해도 신이 나서 박수를 치고 가장 좋아했던 하와이를 지금도 종종 찾는다. 비행도 점점 더 수월해졌다. 물론 뽀로로와 페파 피그에게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게 한 달 살기에 계획을 세우던 중 대 유행이라는 쿠알라룸푸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숙소 수영장


수영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곳은 대부분의 콘도에 수영장이 있으며 치안이 안전한 편이고 인접 국가인 싱가포르와 다민족, 영어 생활환경 등이 유사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체류비용으로 많은 엄마들이 한 달 살기를 선호하는 도시로 급부상 중이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엄마들처럼 똑똑하고 정보력이 강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믿고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항공권은 정답이 아닌 선택사항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이와 지내기로 결정하고 항공권과 숙소 모두 3개월 이전에 예약 완료하였다. 항공권 준비와 하우스 렌트에 대한 부분은 각자의 주어진 예산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선택 사항이다. 다만, 시중에 출간된 한 달 살기 책들과 맘 카페에서 주로 언급하는 동남아시아 대표 저가항공사(LCC)에 대해 나는 총얼마에 아이 몇 명과 다녀왔다는 등의 가격적인 장점만 기술하여 바이블이자 최고의 선택이라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해당 항공사를 검색하면 자주 언급되는 빈번한 연착에 따른 지연 운행과 위탁 수화물의 무게 한도와 비용 여부가 좌석 별로 상이하고 한 달 살기 짐의 양은 수화물 허용치를 넘기기 쉬워 금액이 추가되는 부분도 고려하여야 한다. 교육비를 제하고 항공권과 하우스 렌트 피는 전체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이다. 누구나 본인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기에 스스로의 상황에 맞게 충분히 고려하여 항공권과 하우스 렌트에 대해 결정해야지 책이나 블로그에서 본 다른 엄마의 경험은 참고사항 일뿐이다.


왜 거기 살아요?

Arcoris Mont' Kiara, Kuala Lumpur


몽키아라는 한 달 살기 하는 가족들이 차 없이 지내도 가능한 곳이다. 몽키아라 지역 외에도 데사파크, 암팡, 푸총 등 국제 학교와 직장에 따라 다양한 곳에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특히 국제 학교, 단기 어학원이 밀집되어 있고, 일본인 등 외국인 거주가 많아 치안이 우수하며 대형마트와 한인 마트, 한국 식당이 있는 복합 쇼핑몰로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 쿠알라룸푸르에 오기 전, 추석 연휴에 JB라 불리는 조호바루와 싱가포르에  답사 겸 여행을 다녀왔다. 분명 장점이 많은 곳이었고 싱가포르와 인접성도 장점이다. 그러나 KL에 비해 개발 진행이 한창인 지역이라 그랩이 잘 되어있지만 차량이 필요하고 골프를 즐기는 비용이 대단히 저렴한데 나는 골프에 취미가 없고 우수한 국제 학교도 많지만 미취학 아동인 우리 아이보단 큰 몰과 박물관, 미술관이 많은 도심지의 편리함을 선호하는 내 기준에 맞추어 우리는 KL이 더 적합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하우스 렌트 피를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높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 총소득이 3만 불 수준인데 비해 싱가포르는 6만 불에 가까운 5만 9천 불 수준으로 전반적인 생활수준과 물가도 높다. 결정적으로 단기 거주 렌트 자체가 그리 흔하지 않으며 가능하다 해도 대부분 원 룸에 가까운 매우 좁은 구조였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달 혹은 두 달 거주할 목적의 나라에서 싱가포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와 70일이라는 시간은 생존이 아니라 즐거운 여행이지 않은가? 그 정도 비용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7세 무렵에 한 달 살이 살아보기 여정의 최종 도착지인 유럽에서 사용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

Mont' Kiara 키아라 163몰 한인 슈퍼

우리가 70일간 거주하는 몽키아라는 생활에 편리한 마트와 쇼핑몰이 곳곳에 있고 로케이션이 편리한 만큼 렌트 비용도 이 근방에서 높은 편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트렌디한 식당과 카페가 많고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한남동에 학원 차량을 기다리는 엄마들이 가득한 대치동 학원가 풍경을 섞어놓은 분위기다. 그래서 이곳에 거주지로 선택하는 이들은 여행자보다는 주재원 혹은 아이들의 장, 단기 어학 교육과 국제 학교를 위해 거주한다고 한다. 전반적인 물가도 쿠알라 룸푸르 타 지역에 비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쿠알라 룸푸르로 한 달 살기 도시를 선택하고 거주할 지역과 집을 구하는데 오랜 시간 검색하고 고민하였다.



어떤 이의 글엔 왜 그리 비싼 지역에서 렌트비를 내고 한국에서 매일 먹던 한국 음식 먹고 지내느냐는 엄마들을 질타하는 글도 있었다. 글쓴이의 생각이 여행자의 관점에서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 역시 아이가 없더라면 어느 지역을 가든 오지도 별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행의 새로움과 매력을 위해 한국인이 없는 지역을 선호했을 것이다. 식문화는 그 나라의 소울이라며 한국 식당을 배제했을 것이다. 이곳은 로컬 음식과 중식 그리고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 태국 등 다양하지만, 동남아 특유의 단짠에 간 자체가 쎄 맨밥도 유아가 먹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런 이곳에 한국식 찰진 쌀밥과 계란찜, 미역국, 갈비탕 등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한식당의 존재가 나는 더없이 감사하기만 하다.

몽키아라 한국 엄마로 일주일을 마치며...

KL Tower Mini Zoo


타국에서 한국 엄마들을 마주치면 처음엔 다들 서먹하게 지나치지만, 동네와 어학원에서 조금 얼굴을 익히면 그렇게 정스러울 수 없다.  이 곳 생활 초짜 엄마인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엄마들에게 따듯함을 느낀다. 주 3일 아이 등원 후 오전엔 어학원에 다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이는 주재원인 남편과 국제 학교에 다니는 자녀와 함께 이곳에 거주한 지 1년째 된다. 어학원 차량에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은 성품이 느껴진다. 나이는 어려도 이곳에 대한 팁과 육아에 대해 배울 점 많은 클래스 메이트가 생겨 다행이다. 해외 출장이 빈번하던 S사와 영국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엔 그렇게 영어가 싫었고 실력도 형편없었는데 아이를 갖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부터 영어 공부에 관심을 갖은 게 지금 어학원의 가장 높은 레벨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반짝이던 학창 시절보다 푸근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고부터 늘은 영어라니... 무엇을 하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흔한 말은 사실이었다.  낯설었던 이곳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간다. 무슬림의 나라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참 맛있는 돼지고기를 숙소 바로 지하에서도 살 수 있는 걸 오늘 알았다. 하루하루 소소한 발견에 기뻐하고, 환하게 웃으며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아들과 손 잡고 걷는 행복감을 추억으로 저장하며 이곳 생활의 적응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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