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간 지낸 몽키아라(Mont'Kiara)
아이와 한 달 살기에서 70일간의 여정으로 지냈던 쿠알라룸푸르 숙소는 출발 3개월 이전부터 꼼꼼히 검색하였다. 숙소를 구함에 있어 무엇보다 최우선시 한 부분은 안전이었다.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가족은 대부분 아동을 동반한다. 이곳을 찾는 목적에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에선 몇 안 되는 영어 생활권임을 십분 활용하여 아이에게 영어를 자연스레 경험시키며 자신감을 키우기 위함이 크기 때문이다. 하여,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를 하는 가족은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장기간 휴가를 낼 수 있는 일은 흔치 않기에 엄마와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여타 동남아 국가에 비해 비교적 치안이 우수한 국가이지만, 이곳 역시 빈부차와 도시 근로자의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비 그리고 인근 국가에서 이주한 불법체류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낮보다 밤이 위험하고 우범지역과 치안이 우수한 지역이 공존하듯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주거지에 대한 유의 사황은 비슷할 것이다.
아이와 긴 여정을 떠나며 남긴 첫 글에서 숙소로 정한 지역을 선택한 이유를 장황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왜 가장 비싼 지역을 굳이 선택했는지 말이다. 한번 더 이야기하자면 이곳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엄마들은 홀가분하게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기엔 보호해야 할 어린 자녀가 있고, 우리의 짐가방을 나눠 메어 줄 배우자는 없다. 육아를 경험 한 이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아이에겐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따른다. 물갈이든 냉방병이 되었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손 잡고 달려가야 할 소아과 클리닉은 필수이고, 삼시 세끼를 모두 사 먹을 수는 없기에 인근에 마트도 있고 배달도 가능하면 좋을 것이다. 까다롭거나 입 짧은 아이의 가족, 혹은 향신료 강한 이곳의 음식이 맞지 않을 경우 깔끔한 한식당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한 달 살기를 경험 후, 국제 학교 진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기에 유명 국제학교와 어학원이 모여있는 지역을 자연스레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자의 관점으로 비싼 임대료만 문제 삼기엔 한국, 일본, 호주 등 너나 할 것 없이 엄마들이 선호하는 동네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아이의 연령도, 원하는 경험과 가치도 모두 다른 상황에서 주거지에 대한 단편적인 추천보단 직접 살아 본 지역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기술하였음을 서두에 밝힌다.
KLCC, 부킷 빈탕(Bukit Bintang)
10여 년 전, 내가 근무하던 영국 기업의 Asia 지역 Headquarter 역시 이곳 ‘쿠알라룸푸르’였다. 출장 차 방문했던 이 도시에서 나는 한국의 명동과 광화문 격인 KLCC인근과 부킷 빈탕(Bukit Bintang) 주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 지역에서 본사 직원들과 함께 업무를 보고 느낀 점은 다양한 박람회를 유치하는 컨벤션 센터 인근에 비즈니스호텔이 산재해 있고, 번화한 상업지역이라 업무를 함에 있어 동선이 더없이 편리했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랜드마크 관광지가 인접한 것과 대형 쇼핑몰이 주는 쇼핑의 편의성도 있고 내가 지냈던 몽키아라 지역보단 주거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어학원과 3개 국어(trilingual)를 가르치는 로컬 유치원들도 여럿 있기에 이 지역에서 한 달 살기를 지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퇴근시간과 주말엔 그랩(Grab)을 잡기 어려울 만큼 교통 체증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어학원은 비교적 잘 되어있지만, 5세 미만 아동이 다닐 로컬 유치원은 4개월 단위 등록이 원칙으로 단기 체류 아동에 맞는 관리는 따로 없었고, 한국 원장님들이 운영하는 몽키아라 지역의 유치원과는 교육적인 부분의 차이보다 아이 돌봄에 있어 온도차가 존재했다. 예컨대 익숙한 한식과 웨스턴 식이 적절히 나오는 식단과 기저귀를 교체하는 횟수 등 이 한국 원장님들이 계신 곳은 매뉴얼화되어있어 보다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밤이면 밤마다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부킷 빈탕 주변은 나와 25개월 아기가 지낼 주거지에 맞지 않았다.
조용한 고급 주택가 방사르(BANGSAR)
아이를 등원시키고 브런치를 하거나 쇼핑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주 찾았던 '방사르(BANGSAR)' 지역은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2층, 3층 단독 주택들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유학원을 통해 이곳의 주택을 층 별로 셰어 하고 지내는 한 달 살기 가족들도 꽤 있고, 영어 캠프를 진행하는 어학원과 짐보리, 로컬 유치원 등이 존재한다. 나 역시 한남동 한복판에 갖다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트렌디한 카페가 많고, 관광객이 비교적 적어 조용한 이 지역을 좋아하며 쿠알라룸푸르에서 사귄 말레이시안 친구 제이미를 만난 것도 그녀의 집도 모두 이곳 방사르 지역이었다. 다만, 주택이라는 특성상, 그랩(Grab)보다는 자가 차량이 있는 편이 이동시 편리하고 주택엔 보안 요원이 따로 없기에 모든 콘도 시설에 보안 요원이 상주하는 몽키아라 지역을 숙소로 최종 선택하였다.
이 외에도 장기 거주 주재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식 타운 하우스 형태의 데사파크 시티(Desaparkcity), 한인 타운의 원조였던 암팡(Ampang) 지역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Klcc 시내 중간 정도 위치해 있는 사이버자야(Cyberjaya) 등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엄마들은 한 번쯤은 검색해 보았을 지역일 것이다.
그래서, 몽키아라(Mont'Kiara)
출발 당시 25개월 아기였던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아이의 유치원과 나의 어학원 차량의 이동 거리는 10분 이내로 길지 않기를 바랬고, 숙소 인근엔 반드시 마트가 인접하고 유모차로 걸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을 거리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여 ‘몽키아라’ 지역에서 위치가 가장 편리하다고 평가되는 콘도에 거주 일정과 예산이 맞는 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말레이시아 교민 카페에 문의 글을 올렸다. 10월 말 출발을 계획하고 같은 기간에 렌트가 가능한 집으로 문의를 올리고 기다렸는데 마침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가 있는 가족이 렌트하는 집이 매물로 나왔다. 여기서 왜 전문적인 하우스 렌트 앱인 에어비앤비(Airbnb) 혹은 말레이시아 부동산 앱을 통하지 않고 한국 주재원 혹은 한국 가족이 살던 집을 선호하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교민 카페인 ‘Daum 카페 굿모닝 말레이시아’ 혹은 ‘NEVER카페 마이 말레이시아(My Malaysia)’등의 숙소 후기를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서도 괜찮은 호스트와 숙소를 찾을 수 있다. 다만, 국가가 다르듯 개미 등의 벌레와 위생에 대한 기대치도 상이하고, 고급 신축 콘도에서도 방충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콘도마다 방역을 철저히 하기에 열대우림 혹은 지방이 아닌 이상 도시에선 뎅기열이나 지카 바이러스, 말라리아에 대한 부분은 예상보단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지만, 한국 가족이 거주했던 집을 승계받는 경우는 전기밥솥과 코팅된 프라이 팬을 갖추고 있는 반면 말레이시안 혹은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집에는 기본 가전이 없는 경우가 많아 사전에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물은 ‘석회수’이며 수도관도 노후되어 불순물이 많은 말레이시아의 수돗물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정수 필터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인이 거주하거나 관리하는 집의 경우 정수 필터가 대부분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교민 카페를 통해 구하는 집을 좀 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카페 글을 통해 한 달 살기 집과 집주인과의 문제로 한 달이라는 귀한 시간을 분쟁으로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왕왕 있기에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집주인과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아코리스 18F
긴 여정을 앞두고 기분 좋게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집주인과 집을 만난 덕분이었다. 쿠알라룸푸르 출발 3개월 전에 계약을 완료한 우리 숙소는 같은 개월 수의 아기가 살던 주재원의 집이었다. 한국에서 유명 프로 축구팀의 오랜 선수생활을 마치고 이곳 말레이시아 구단으로 이적하여 향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축구선수의 집으로 가구와 집 손상에 대한 디파짓(deposit) 개념의 보증금과 두 달 하고 10일간의 숙박비용 절반을 계약과 동시에 미리 지불하였다. 집주인 내외는 친절하게 이곳 생활 정보와 정수 필터 교환 방법 등을 동영상으로 보내주며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걱정을 덜게 해 주었고, 같은 개월 수의 아이가 있음을 알고 동화책과 장난감을 상당 부분 남겨두었다. 한 달 살기를 지내다 보면 집 문제로 집주인과 연락할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인터넷 연결이나 위, 아랫집의 누수(leaking) 문제 등 사소하지만 집주인과의 상의가 필요한 일들 말이다. 이곳 거주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남편도 관리사무소도 아닌 집주인만이 나를 도울 수 있기에 언제나 꼼꼼하되 정중한 태도로 문의와 답변을 하였다. 집주인 내외 역시 한결같이 친절하게 답변하고 늘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묻고 요청하라는 좋은 이들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주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새 구단으로 이적을 앞두고 페낭으로 떠나는 집주인을 만나 덕분에 깨끗한 집에서 편히 잘 사용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갑게 나누었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고 집을 승계받으며 알게 된 가족이지만 낯선 이국 땅, 우연히도 같은 공간에서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도 진심으로 반갑게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전하였다.
매일 아침, 콘도 정원을 따라 걸으며 이웃집의 일본 엄마와도, 한국에서 온 한 달 살기 엄마들과도 인사를 나누던 등원 길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마트 쇼핑과 식사의 상당 부분을 해결했던 숙소 바로 옆, '163 쇼핑몰'과 아이가 열이 올랐을 때 방문했던 원 몽키아라의 '히바리 클리닉'이 걸어 오분 거리에 있음에 다행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 덕에 가져온 옷들이 죄다 작아져 급히 이것저것 사야 했던 H&M, 맛있던 한국식 통닭집 ‘촌닭’의 토종닭 튀김도 아이가 하원하고 돌아와 수영 후, 제일 좋아하던 간식이었다. 나에겐 이곳이 아이에게 안전하고, 엄마로서 더없이 편리했기에 나는 ‘몽키아라’에서 지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유학원을 통하여 학원과 거주지를 통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 달 살기 거주지를 정하기 전에 ‘말레이시아 관련 카페’에 가입하여 먼저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한 달 살기 엄마들의 후기와 주재원과 교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읽어보며 정보력을 키우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