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교육의 중요성
지난 어린이날에 남편에게 위인전과 동화책을 선물했다. 책 뒤면에 적힌 권장 연령을 보니 초등 3, 4학년 이상 추천 도서였다. 그 나이 때면 생활지도나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내용 보단 사회에 대한 이해나 교우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흔 중반의 남편에게 문학 소설이나 경영 전문 서적이 아닌 어린이 도서를 선물해 준 것에 대해 의아해할 것이다. 남편은 전문직 ‘사’ 자 호칭을 받고 사는 다 큰 어른 이건만 어린이용 위인전에 동화책이라니 말이다.
남편은 수학 특기자였다. 수학 시험을 반타작하면 선방했다 안도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지금도 정석 2를 풀면 재미있다고 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해 대입 전형도 수학 특차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취약한 분야가 있듯 고난도의 수학 문제도 술술 풀어 수학 천재 소리를 듣던 남편은 안타깝게도 수학 이외의 분야에 대해 그리고 독서에 취미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리 잡으면 좋았을 독서 습관이 남편에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독서가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수학 천재도, 명문대 학위도 대신할 수 없는 것>
남편에게 책을 권하게 된 계기는 수없이 많다. 삼 남매 중 막내였던 남편은 형과 누나의 뒷바라지만으로 바쁜 시부모님께서 가장 키우기 수월했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성적이 좋아 알아서 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책 읽기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은 후회가 된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 전 함께 보았던 충무공 이순신의 영화 ‘명량’을 남편의 계속된 질문으로 집중하지 못하던 그날 나 역시 같은 걱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부분이야 조금 늦게 접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역사책을 좋아했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위인에 대해선 해박해도 그건 극히 일부에 국한된 것이며 입시 교육에만 최적화된 남편에겐 선조가 이순신을 싫어했던 이유는 시험 문제로는 출제되지 않는 영역이라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독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이 시작된 건 바로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남편은 직원들의 상담 내용에 대해 종종 곤혹스레 상의를 하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한국말도 해석이 필요하냐며 타박만 하기 일쑤였다. 내 남편이라서도 있겠지만, 남편은 누구보다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착하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영역이 아니다. 남편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공감을 어려워했고 특히나 여직원들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해 상사로서 가르쳐야 할 잘못된 태도에 대해 어려워하거나 직원들이 업무적으로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상담을 투정으로 곡해하기도 했다.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 아닌 이상 문제가 발생 시, 서로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공감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어려워하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듣고자 남편의 사례를 거론하면 남성의 공감 능력에 대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여자의 뇌는 양육을 위해 공감과 의사소통에 더 적합하게 진화” 했고, “남자의 뇌는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논리 체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데 더 적합하게 진화했다.” 이 문구는 얼마 전 뉴스에서 화제가 된 교육부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의 일부이다. 글이 올라온 후, 교육부는 쏟아지는 비판과 항의로 논란이 일자 위 내용을 삭제하고 공식적으로 해명하였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가 기관에서조차 공감 능력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위와 같이 언급했듯이 우리는 뇌과학에 대해 과학적이지 않는 속설을 사실인 양 믿고 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남자와 여자의 뇌는 같을까?'라는 책에서 찾았다. 저자인 카트린 비달(Catherine Vidal)은 국가별로 한 명도 수상하기 어렵다는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10명이나 배출 한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Institut Pasteur)에서 신경생물학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1995년부터 2004년 사이에 수백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유전자와 호르몬이 뇌의 발달에 관여한다 할지라도 뇌 기능은 성별이나 선천적 요인보단 환경이 포함된 후천적 요인이 결정짓는다고 명시하였다. 후천적 요인에는 개개인의 건강, 질병과 같은 내적 요인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 독서, 상호 관계를 통한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나 ‘전두엽’은 인간이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감정 조절과 ‘공감능력’을 보이는 것을 관할하는데 전두엽의 발달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운동과 독서’다. 전두엽 발달은 20세를 기점으로 멈춘다지만, 꽤 어른이 된 것 같은 중년의 나이에도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이 앞으로도 남은 그에게 독서의 취미를 갖게 하고자 처음 남편에게 선물했던 책은 내가 어린 시절 몇 번이고 읽고 좋아했던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였다. 제 시기에 동화책과 청소년 도서를 읽지 않은 이에게 어려운 고전과 문학책은 쉽게 흥미를 잃을까 우려되었고,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권하며 소설 속 주인공인 몽실이의 역경에 슬퍼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저녁 식사 후, 시큰둥한 모습으로 못 이기는 척 ‘몽실언니’를 손에 쥐고 방으로 들어갔던 남편은 자정 뉴스가 나올 무렵 눈시울이 한껏 빨개진 채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새벽녘까지 몽실이 방 호롱 불빛에서 마주친 앳된 소년 공비의 눈빛과 구두닦이 몽실이 남편을 상상하며 오래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날 이후, ‘15 소년 표류기’부터 ‘사자왕 이야기’까지 30년 전, 추억을 더듬으며 남편에게 동화책과 청소년 도서를 권하였고, 그렇게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그는 이제는 좋아하는 작가 목록도 생겼고 에세이와 간결한 문체의 일본 소설을 동화책과 병행하며 읽고 있다
남편의 전두엽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읽기를 시작한 후 ‘왜?’라는 말보단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어도 아이가 그 책들을 읽을 나이에 아빠에게 질문을 했을 때 ‘어 아빠도 그 책 재미있게 읽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내일은 남편의 생일이다. 생일 선물로 구두와 초등생용 ‘광개토 대왕’ 위인전을 준비했다. 중국의 역사 왜곡 작업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해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애국심 넘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초등학생들이다. 남편이 찬란했던 고구려의 역사와 위대한 정복왕 광개토 대왕을 읽고 ‘동북공정’에 대해 초등생들처럼 거품을 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