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o Sep 03. 2020

꼬깃꼬깃 할머니의 쌈짓돈

바깥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에어컨을 켠 채 차량의 창문을 모두 반쯤 내렸다. 어디선가 본 기사에 밀폐된 공간의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 했던가. 뒷 좌석에선 스스로의 오지랖에 책망하며 안절부절 까맣게 타고 있는 애미의 속을 알 턱이 없는 아이가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할미, 나 모기에 물렸어요, 할미 나 물 먹어요. 할미...”


쉴 새 없이 종알거리고,


“아이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애기 엄마. 오늘도 참 덥네요. 내가 여기서 40년을 살았어요. 마을버스가 이 골목까진 안 와요. 나는 딸만 넷이 있는데…”


할머니도 연신 땀을 훔치고 가쁜 숨을 내쉬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할머니께서 집에서 나오며 마스크를 깜박했다는 푸념을 하시는 순간, 즐거웠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콧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에선 자책이 시작됐다.


아… 왜 그랬을까… 주책바가지 정말…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길에서 낯선 할머니를 태웠느냔 말이다.


부암동에서 효자동 삼거리로 향하던 그 15분 간 점점 더 커지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 그리고 만약 정말 문제가 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거리 두기 규칙을 따르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두려움까지 온갖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내 자신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조금 지나 길가에 비상등을 켠 채 항균 99%라 큼지막하게 적힌 소독 티슈로 내 손과 아이 손을 그리고 낯선 할머니가 앉으셨던 뒷좌석을 연신 닦는데 아이 손에 지폐가 쥐어 줘 있었다.


‘이건 네 꺼, 이건 엄마 꺼’

생각해보니 운전을 하느라 보진 못했지만, 뒷좌석에서 어눌한 말투의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무언가 주시는 것 같긴 했다. 그게 꼬깃꼬깃 접힌 만원 지폐였구나. 지폐를 바로 접으면 펴지려는 복원력에 저리 납작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접힌 채 할머니의 지갑 속에 있었던 것인지, 지폐는 그 모습 그대로 납작하게 낡아져 있었다. 쌈짓돈이었을 돈을 쥐어주시고 가신 할머니. 15분간의 내 망상과 번뇌가 서글퍼졌다. 요망한 코로나는 건강만 상하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간염 시키는가 보다. 아주 좁게.


살아오며 경험했던 일을 다시 했을 땐, 보다 수월하다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올해 알게 되었다. 평범했던 일상에서 마스크를 제2의 피부로 받아들이고 되도록 집에서 머무르는, 연초에 경험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 일상의 답답함을 이미 알아서일까? 아니면 다음 달이면 꽉 찬 36개월, 내가 바로 ‘미운 네 살’이다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는 '독박 육아' 가정 보육 때문인지 다시 시작된 거리 두기는 의자를 모두 포개어 한쪽에 켜켜이 쌓아 두고 테이블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오가는 이 없는 썰렁한 동네 카페처럼 기운 빠지는 일이다.


연일 집에만 머무르다 밖에서 놀고 싶어 하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사람들이 모이는 실내 공간을 피하고 정부 시책을 따르면서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 인적이 드문 ‘숲’으로 향했다. 우리가 종종 찾는 '부암동 숲'으로 가려면 여러 경로가 있지만, 인내심 없는 네 살 아이와 함께 갈 땐 되도록 차량으로 최대한 이동해야 하는데 70도 각도에 육박하는 급 경사진 좁은 언덕길로 핸들을 움켜쥐고 조심스레 운전해야만 한다.


무더위는 본디 입추(立秋)가 지나야 시작이라 했던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늦더위는 여전하지만, 숲길에 들어서면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나무 그늘과 졸졸 흐르는 계속 물 덕에 시원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숲 속에선 돌멩이도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도 모두 장난감이 된다. 아침 식사 후 찾은 숲 속에서 모처럼 마스크도 벗고 올챙이도 찾고 솔방울도 주우며 한 참을 신나게 놀았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돌아가기로 하고 다시 차에 올라 타  골목길을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하며 되돌아가는데 골목 중간 즈음에 등이 이 골목처럼 굽은 자그마한 할머니가 경사진 언덕길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들게 내려가시며 연신 땀을 훔치는 게 보였다. 가파른, 그것도 꽤 긴 거리를 이 더위에 내려가야 할 할머니의 모습에 내리막길이 끝나는 골목 입구까지 태워드리겠다고 어서 타시라 말씀드렸다. 고마워하시는 할머니 덕에 그 순간만큼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 행선지를 물으니 효자동에 가신단다. 집으로 향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니어서 효자동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차에 타고 몇 분이 흘렀을까. 할머니는 마스크를 못 챙겨 나왔다고 나와 아이에게 어서 마스크를 쓰라고 하셨다. 순간, 얼어붙은 나는 내가 지금 괜한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걱정은 점점 더 커지고 15분쯤 걸린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할머니의 인사를 뒤로하고 100M쯤 가서 비상등을 켠 채 길가에 주차를 하고 소독 티슈로 유난을 떨었다. 그리곤 아이가 양 손에 쥐고 있던 꼬깃꼬깃 접어진 만원 지폐를 본 순간 당혹감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미안함인지 죄스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뒤섞였다.


남산 터널을 지나니 아이는 이른 아침 나들이의 고단함에 잠이 들었고, 굽이 굽이 남산길을 내려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의 일화를 ‘미쳤나봐’를 연발하며 주저리주저리 전했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 남편이 짧게 한 마디 해 주었다.


“잘했네.”


진심이든 전화를 빨리 끊고 싶어 한 말이든, 이 한 마디가 무겁고 부산했던 마음을 조금 다독여 주었다. 내가 부린 오지랖인데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를 바이러스처럼 취급한 것만 같아 너무도 미안했다. 이 몹쓸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불안 심리는 그렇게 할머니를 태워드릴 때의 기쁜 마음도 불안감으로 뒤덮어 사람을 지지리도 못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월드컵 시즌이면 모르는 이와도 하나 되어 길거리 응원을 즐기며 기쁨을 나누던 정 많은 민족 이건만 지금은 엘리베이터와 지하철 등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슬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언택트 시대는 이미 도래해 업무와 교육 등 급격한 변화 속에 아이를 내가 살아온 경험에만 비추어 양육하기엔 이미 30여 년 전 소년중앙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보던 미래 사회가 현실이되었다. 엄마인 나부터 시대의 변화 속에 불안감으로 쪼그라들었던 마음의 균형을 찾는 '심리 방역'이 절실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