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춘천 여행"
주말에 아이와 함께 춘천 여행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불리며 연인들의 설레는 데이트 성지였던 춘천은 엄마가 되어 아이와 와보니 또 다른 매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춘천은 수도권에서 청정 지역의 대명사 강원도를 가장 가깝게 경험할 수 있는 도시로 당일 여행객들에게도 부담 없는 곳이다. 주말 아침을 간단히 먹고 모닝커피는 춘천의 꽃밭에서 마실 계획으로 오전 8시에 출발해 10시 조금 못 미쳐 춘천에 도착했다.
꽃과 푸르름이 가득한 그곳
이른 아침에 도착한 곳은 춘천시 신북읍 지내리에 위치한 ‘유기농 카페’라는 곳이었다. SNS에서 우연히 본 드넓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의 풍경을 보고 찾아간 곳인데 한적한 시골 논밭 사이로 해바라기, 수국, 메리골드 등의 꽃밭이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꽃밭 이곳저곳을 신기해하는 아이의 웃는 모습도 담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마주한 시골의 한적한 풍경은 아이에게도 내게도 평화로움을 선물해 주었다. 요즘 같은 한 여름 날씨를 고려하면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꽃밭 구경을 실컷 한 후, 우리는 30분 거리의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에 위치한 ‘해피 초원 목장’을 방문하였다. ‘해피 초원목장’은 산 중턱에 조성된 드넓은 초원에 양 떼와 소떼가 자유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와 소에게 먹이 주기 체험도 하고 겹겹이 자리한 아름다운 강원도의 산세를 보며 시원한 물로 만들어 놓은 작은 물놀이 공간에서 아이는 옷이 흠뻑 젖도록 행복해했다. 한나절 실컷 놀고 젖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혀 목장을 내려오는데, 까만색 반팔 티를 커플로 맞춰 입은 어린 연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목장이 산 중턱에 있어 버스 정류장까지 멀진 않지만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내려가야 했다.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 문을 열고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 말하니 어린 연인은 감사하다며 뒷자리에 올라탔다. 5분 남짓 짧은 시간 태운 이들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남편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그냥 이 더운 날씨에도 나란히 손잡고 걷는 뒷모습이 이뻐서,라고 답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지난 주말 춘천의 날씨는 35도 폭염이었다.
'문화의 도시 춘천'
목장을 나와 우리는 '춘천 시내'로 향했다. 시로 향하는 길목에 단편소설 ‘봄봄’과 ‘동백꽃’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딴 기차역을 찾았다. 대성리와 강촌으로 MT를 다녔던 90년 대 학번인 나는 경춘선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골 간이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김유정역’에서 춘천이 ‘문화의 도시’ 임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기차역 주변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무심코 찾았던 여행자에게 다시금 작가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든 ‘김유정 문학촌’을 보며 ‘춘천시’를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춘천 시민’의 높은 문화 수준에 놀랐다. 매년, 춘천 시민과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는 백일장과 문학제가 열리고, 80년이 넘게 작가의 추모식 행사를 지속한다고 하니 이 도시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 예술가를 극진히 예우하는 모습에서 아무도 찾지 않아 지자체 예산 낭비로 이어지는, 예컨대 머드 체험장에 배치한 문학관, 예술가의 작품과 이름을 맥락 없이 갖다 붙인 낚시 대회와 전망대 등 촌극을 연출하는 지역들과는 결이 다른 도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장소들은 모두 젊은 층의 새로운 소비 기준으로 외식, 여행, 쇼핑,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한 장소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춘천 여행의 끝은 '춘천 닭갈비'
아이와 함께 유명 맛집을 방문하는 일은 녹록히 않다. 그래서 우리는 혼잡한 식사 시간을 피해 방문을 한다. 오후 5시에 방문한 ‘춘천 원조 숯불 닭불고기’ 집은 주차도 편리하고 2층 좌식 좌석은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흔히, 춘천 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닭갈비’를 손에 꼽는데, 이 집에서 매콤한 닭갈비와 함께 판매하는 닭의 오돌뼈 소금구이는 서울에서는 맛본 적 없는 별미였고, 맵지 않은 간으로 살코기 부위를 아이에게 주니 맛있게 잘 먹었다. 강원도식 된장찌개와 공깃밥에 막국수까지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섰다. 아이는 온종일 신나게 뛰어놀고 밥도 배부르게 먹어선지 집으로 가는 내내 잠이 들었다.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춘천 여행’은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 한 봉지와 남편과 평소라면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사안들도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서울로 향했다. 여행이 주는 것은 비단 아이와의 추억과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예년 같으면 여름휴가를 맞아 전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로 인천 공항이 연일 북새통일 터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비대면 언택트(Untact) 문화가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여행 문화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나만 해도 주말여행을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핫플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검색어 보단 #안알려줌, #나만알고싶은곳 이라는 해시태그도 찾게 되었고, 엄마들 사이에서 열풍이던 해외 ‘한 달 살기’ 트렌드는 #강릉한달살기, #여수한달살기 등 국내 여행지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 19는 국가 간의 이동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하여, 올여름 휴가는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환적 관점에서 국내 여행과 지역의 가치를 성장시킬 기회가 온 것이라 생각된다.
아이는 낯선 곳을 걸으면 자꾸 돌아본다.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며 걷던 아이가 어느 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는 순간이 올 때까지 많은 추억을 함께 하고픈게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답답했던 코로나 일상에서 아이와 찾은 ‘춘천 여행’은 가까운 곳에서도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시간이었다.
여름날, 아이와 함께 '춘천'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