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부산 여행
넓고 푸른 바다처럼 넉넉하고 따듯한 사람들의 푸근함에 전염되었던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행 기차에 올라타 어느새 자라 한 사람 몫의 자리를 차지한 아이와 함께 처음 떠나는 부산 여행이 설레었다. 업무 차 미리 부산에 도착한 남편에게 기차에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띠띠뽀에 탄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아이에게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주의를 여러 차례 주었다. 아이는 제법 함께 여행을 다녀본 경험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입으로는 연신 곰돌이 젤리를 주어 넣었다. 아이 머리에 헤드폰을 씌우고 좋아하는 영상물 한 편을 틀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다 식은 커피 한 모금 마실 수 있었다.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의 주요 클라이언트가 부산에 본사가 있어 남편은 격 월로 부산 출장을 다니지만, 주로 당일에 서울에 오는 무박 일정이었기에 주말을 붙여 함께 여행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야야, 아 데리고 내려 온나”
수화기 너머에서 푸근한 부산 사투리로 건넨 부산 언니의 말 한마디에 아이와 함께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겨울, 만리타향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이와 단 둘이 용감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괜스레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지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던 크리스마스와 새해로 이어지는 연휴 기간을 몽키아라에서 만난 부산 언니들 덕분에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먼저 부산으로 돌아간 언니와 함께 한 시간은 한 달 남짓이었고 한국에 돌아와 곧이어 터진 코로나 사태에 우리의 만남은 기약 없이 미뤄져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안부 문자를 주고받다 통화를 하게 된 부산 언니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마치 하루도 안 된 것처럼 편안했고 나는 부산 사투리가 주는 그 투박한 정스러움이 좋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도착한 부산역에서 배고프다 칭얼대는 아이와 역전 식당에서 수제비와 김밥을 나눠 먹고 해운대로 향했다. 이번 부산 여행은 해운대 마린시티에 위치한 ‘파크 하얏트 부산’에서 지냈다. 객실 창 밖으로 서울에서는 본 적 없는 요트가 정박된 모습에 아이가 통통배라 외치며 좋아했다. 온종일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남편과 수박 빙수를 나눠 먹으며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절로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청사포'에서 대선 한 잔
저녁 식전에 광안리 부산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끼리 요란스레 인사를 나누고 아이는 외갓집에 온 것 마냥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신이 났다. 부산 언니의 친정어머니께서 와 계셨는데, 서울에서 모처럼 내려온 손님들 식사 편히 하라며 저녁 시간 동안 아이를 맡아 주시려 오신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데 부산 언니가 "어서 나온나" 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렇게 언니는 나와 남편을 태우고 청사포 바닷가 앞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언니가 따라주는 대선 한 잔에 웃고, 통통한 가리비 구이와 바닷장어 구이에 또 웃었다. 인연에도 유효 기한이 있다는데, 부산 언니의 넉넉한 심성은 인간관계의 방부제였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방어벽부터 치게 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며 등, 하원 시간에 마주치는 한국 엄마들에게 선뜻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런 내게 구수한 사투리로 다가온 부산 언니에게 나는 빙구 웃음부터 짓게 되었다. 청사포에서 언니가 따라 준 대선은 그간의 육아 스트레스가 다 녹아버린 듯 달았다.
바닷바람 맞으며 먹는 곰탕 한 사발
눈 뜨자마자 밥 달라 보채는 먹성 좋은 아이 덕에 호텔 예약을 하면 항상 조식을 예약 해 두었는데, 부산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호텔을 나와 바다를 우측에 두고 걸으면 카페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들이 여럿 있고, 무엇보다 좋은 건 바다를 지척에 두고 식사를 할 수 있게 야외 테라스 테이블들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도 맛있고 유명한 곰탕 집은 많지만, 푸른 바다를 보며 곰탕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막연히 부산이 남쪽에 있어 서울보다 더울 것이라 여겼는데, 날씨가 흐린 탓 도 있겠지만 잔잔히 부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곰탕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바닷가를 걷는데 남편과 나는 동시에 하와이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와이는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이다. 그런데 해운대에서 맞은 아침도 하와이 못지않았다.
푸짐하고 저렴한 대게 한 상
부산 언니의 가족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언니의 큰 딸이 대게를 좋아한다 하여 대게찜 집으로 향했다. 대게를 배불리 먹고 나와 언니가 데려간 곳은 수변 공원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삼삼오오 주말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밤이 되니 낭만적인 분위기로 변한 광안대교와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지나 누구나 이용 가능한 어린이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물을 채우지 않았지만, 미끄럼틀과 놀이시설로 아이들은 다음날 목이 쉴 정도로 신나게 소리 지르며 뛰어놀았다. 어찌나 신나게 뛰어다녔는지 아이가 놀이터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가 싶더니 이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름다운 '용궁사'에서 '부산 물떡'
다음날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는 ‘아난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바닷가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에 들렀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이곳은 부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방문하는 국민 관광지이다. 일출 명소이기도 한 이곳을 아이와 함께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것은 무리여서 우리는 사람들의 방문이 가장 적은 늦은 오후 시간에 찾았다. 절을 나서며 주차장 입구에 있던 가게에서 ‘부산 물떡’을 먹었다. 부산에 오면 생소한 음식이 오뎅 국물에 가래떡을 익혀 주는 것이었다. 이를 처음 먹어 본 아이는 연신 맛있다며 물떡 한 개를 금세 먹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물떡을 먹으러 바닷가 절에 또 가자고 했다. 네 살 아이에게 용궁사는 물떡 맛집으로 기억되었다.
아이도 한 그릇 뚝딱 비운 돼지국밥
3일간의 부산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부터 정 많은 부산 언니는 아침은 멕이고 보내야 한다며 주소 하나를 보내주었다. 렌터카에 짐을 싣고 도착한 ‘돼지국밥’ 집은 이른 시간부터 문전성시였다. 푹 익혀 부드러운 고기와 잡내 없이 맛있는 국밥에 아이도 호호 불어가며 잘 먹었다. 부산에 오면 시원한 대구탕 집을 주로 찾았는데, 이 집 국밥 맛에 이래서 부산하면 돼지국밥을 언급하는구나 싶었다. 식사 중에도 부산 언니는 마흔 중반으로 향해가는 다 큰 아줌마를 아이 어르듯 밥 든든히 먹고 기차 타라며 사투리로 한 마디 건네는데 그 정스러움에 콧등이 시렸다.
국밥집에서 차로 오분 거리에 있는 광안리 해변에서 언니와 커피 한 잔 나누었다. 서울에도 가장 많이 보이는 평범한 체인 카페지만, 이곳이 특별한 건 같은 커피도 바다를 마주하고 마신다는 것이다. 사람 마다야 다르겠지만, 부산 사람들은 넓은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가기에 이리도 정이 많고 넉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려오라는 언니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향하며 내내 조용히 운전만 하던 남편이 한마디 꺼냈다. 이준 엄마는 좋겠다. 부산에 좋은 언니가 있어서.
그리고 ‘정란각(문화공감 수정의 옛 명칭)'
서울행 탑승 시간까지 두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특별한 공간 ‘정란각(貞蘭閣)’으로 향했다.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에게,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깝다.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가 보이고, 일본 라디오 방송 전파와 TV 영상이 잡힌다. 그래서 7,80년대의 예능 PD들은 프로그램 기획을 앞두고 일부러 부산을 찾았다는 방송가의 떠도는 이야기도 있고, 부산이 고향인 친구는 우리 세대의 오빠들이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콘서트를 쉽게 구해 볼 수 있었는데, 일본 생방송으로 나온 걸 VHS 비디오로 구워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 근처 가게에서 팔았다고 한다. 부산역과 가까운 수정동에 위치한 일본식 가옥인 이곳은 해방 후 한국 사람에게 ‘적산(敵産, 적의 재산) 가옥’으로 불하(拂下)된 뒤, 씁쓸하게도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 당시 국가가 나서 '요정과'를 만들어 외화벌이라는 명목으로 ‘기생 관광’이라 불리는 부끄러운 매춘 사업을 직접 관할하고 육성했다고 하니 이곳 역시 같은 맥락의 서글픈 연장선 이리라. 2007년 7월 3일에 등록문화재 제330호로 지정됐고, 2010년에 문화재청이 건물과 주변 터를 매입했다.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관리를 맡아 ‘일제 수탈 박물관’등으로 검토되다 '문화공간'으로 복원되어 부산 동구 노인종합복지관과 문화유산 신탁이 함께 전통찻집 ‘문화공감 수정’의 문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곳이 일반에게 알려진 것은 대중문화와 SNS의 영향이 크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1990)’과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2012)등 영화와 더불어 가수 '아이유'의 2017년에 발표한 '밤 편지' 뮤직 비디오 속 영상의 대부분이 이곳 '정란각'에서 촬영되었다. 이렇듯, 이 공간이 주는 미학적 건축 요소가 주는 특별함에 사진 명소가 되었고, 주말이면 줄을 서서 방문할 정도로 젊은 층의 카페 투어 성지이자 인기 관광지로 거듭났다. 과거, 이곳의 쓰임새와 복원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고 한다. 일제가 지은 건물이니 무조건 부셔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이곳이 일제 시대를 잊지 말자며 애초에 검토된 대로 ‘수탈사 전시관’등으로만 쓰였다면 이곳을 자발적으로 찾는 이들이 지금처럼 많았을까?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게 과거사만을 곱씹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것이 전부라 여긴다면 우린 다음 세대에게 분노만을 물려주는 일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식민통치 시대의 만행을 피해자 담론으로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가치 담론으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여기는 건 아직은 어려운 일인 것 일까. 아름다운 이 공간에서 다음 세대인 아이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부산 언니의 따듯한 한 마디에 떠났던 부산은 언제 보아도 좋은 바다와 맛있는 음식, 따듯한 인심 그리고 다시 찾고 싶은 특별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 이 도시의 매력을 찾아 아이와 부지런히 부산 여행을 다녀 볼 생각이다. 아이는 때로는 아이다운 상상력이 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만의 시선으로 부산에서의 기억을 종종 이야기한다. 누나야들과 원 없이 뛰어놀았던 바닷가 놀이터, 정란각의 다다미 방, 마루에서 할머니가 신발을 신겨 준 일 등 행복했던 기억을 엄마와 나누고자 하는 아이에게 나도 장단을 맞춰준다. 주 '양육자'이지만, 때때로 함께 여행을 떠나 추억을 나눴던 '여행 동반자'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