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할 수 없는 장소에 대하여

<애도 일기> 롤랑바르트

by 제일린

10.31

월요일 오후 3시 - 처음으로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이 집에서 완전히 혼자 살 수 있어야 하리라. 그러자 동시에 분명해 진 사실: 이곳을 대신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애도 일기> 롤랑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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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는 고작 세 줄만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글보다 공백이 더 많은 것이 독자를 외려 배려한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듭니다. 비어있는 부분에 어떤 공간을, 누군가의 이름을 적고싶어집니다. 저는 간결하지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글을 좋아합니다. 뛰어난 수사법은 훔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시선을 붙잡아 두는 글은 나를 내어놓게 하거든요. 수많은 시간들을 되짚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나가며 이미 지나가버린, 다시 살아 숨쉬지 않는 시간에 애도를 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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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언제나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당신에게도 이런 장소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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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대신할 수 없는 장소 중 하나는 대전역입니다. 일상처럼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서울행 ktx를 탔고, 우리는 곧 다시 만날거라는, 대략의 약속도 없는 채로 헤어졌죠. 사랑했던 사람은 저와 한 공간에 함께 있었지만 누구도 다음을 말하지 않았어요. 그 한마디의 부재가 굉장한 슬픔으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 곳을 지날 때면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그 사람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언제쯤이 되어야 의연하게 공간 그 자체로 지나칠 수 있을지 싶어요. '우리'는 이제 사라졌기에 제게 그 곳은 조금 비어있는 채로 남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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