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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몰트위스키 (Malt)

“몰트위스키를 이야기하던 어느 날들”

by 제이림


한때 나는 술을 마시기보다 설명하던 사람이었다.

몰트위스키의 향과 색, 잔에 닿기까지의 숙성 과정을 수십 번도 더 말했고,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게 일이었다.


그 시간 속엔 나도 있었다…


잘 정제된 오크 향처럼—그때의 나는 조금 더 단단했고, 조금은 더 그럴듯했다.


이 이야기는 위스키에 대한 회상이면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조각이다

‘지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몰트위스키 (Malt Whisky)

브랜드 홍보대사 (Brand Ambassador)

2000년대 초반, 미국 치킨 패스트푸드 회사에서 키즈 마케팅을 담당하던 나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영국 본사의 임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나는 수입 주류 회사의 브랜드 홍보대사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브랜드 홍보대사(Brand Ambassador)란, 회사의 주력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고, 이를 현장에서 직접 알리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그 당시에는 소셜미디어/인플루언서 등이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명품브랜드나 고가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에서 조금씩 시도를 하는 마케팅방법 중에 하나였다. 나는 마케팅팀 소속으로, 회사의 주력 위스키가 '될' 몰트위스키를 판매되는 현장에서 제품을 교육하고, 알리는 일을 담당했다. 그 당시 주류 시장은 TOT (Traditional On Trade - 흔히 룸, 단란, 나이트)가 주력이었던 시기였다. 그때는 몰트위스키가 한국에서 주력으로 판매되는 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스키를 소개하고 그 깊이를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브랜드 홍보대사로서 내 역할은 단순히 제품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위스키를 마시는 문화적 경험과 브랜드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 일의 핵심이었다. 사무실에서 진행된 첫 공식 인터뷰는 예상보다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합격 통보와 함께 두 번째 인터뷰는 호텔 바에서 이루어졌다. 사무실 인터뷰 후 합격통보를 받을 때, 내가 담당하게 될 '몰트위스키'에 대한 자료를 함께 이메일로 받았고, 며칠 동안 자료를 공부하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도 하고 공부도 하였다.


바 책임자도 함께 동석한 그 자리에서, 나는 단순히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지, 어떤 태도로 사람들과 어울리는지까지 평가받고 있었다. 이 면접은 그저 ‘위스키’와 관련된 직무만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을,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줘야만 했다.


드디어 두 번째 인터뷰 날이 되었다. 내가 찾은 곳은 강남에 막 오픈한 5성급 호텔 바였다. 자리에 앉으며 캐주얼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식음료 총책임자도 배석하여 술을 한 잔 나누며 분위기는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서울 시내 한 호텔의 바 - 직접 촬영한 이미지


그러던 중, 영국 임원이 “Jay, tell Mr. Choi about our whisky and the difference from blended whisky.” (최상무님께, 우리 위스키가 일반 위스키와 뭐가 다른지 설명 좀 해 주겠습니까?)라고 대화를 꺼냈다.


나는 잠시 망설임 없이 한국어로 위스키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심이 되는 몇몇의 몰트위스키와 알코올 베이스가 되는 그레인위스키를 섞어서, '위스키메이커'가 최상의 맛을 만드는 위스키입니다." 내 설명은 단순히 위스키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술과 문화와 비교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몰트위스키는 맥아(보리를 싹 틔운 곡물)만을 원료로 하여 단일 증류소에서 증류한 순수하고 깊은 풍미의 위스키입니다. 여러 곳의 몰트들을 섞어서 만든 것은 '블렌디드 몰트위스키', 단일 증류소와 단일 몰트만으로 만들어 낸 위스키를 '싱글몰트 위스키'라 부릅니다. 그 순간, 나는 그저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 임원이 위스키 세 병을 주문했다.
그중 두 병은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였고, 나머지 한 병은 우리가 주력으로 판매하게 될 12년 산 싱글 몰트였다. 그는 마치 나에게 이 일을 넘겨주듯, 직접 테이스팅 방법을 시연하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잔을 돌리고, 향을 맡고, 한 모금 머금은 뒤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며, 하나의 작은 테이스팅 세션이 그 자리에서 열렸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싱글몰트와 브렌디드 위스키 비교 테이스팅 세션 - 직접촬영

‘아, 저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되겠구나.’


그날 나는 바에서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술을 따르고, 설명하고, 공감하는 일을 경험했다.
위스키의 우수성을 알리고, 그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그게 내 일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들도 초대하여, 위스키 세 잔을 각각 비교하여 시음하게 하면서, 싱글몰트위스키가 얼마나 다르게 좋은지, 어떤 부분이 다른지 설명도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나의 2차 인터뷰는 오후 7시부터 시작했는데, 시간이 9시쯤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본사 임원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Jay, I am going to hold these whiskies under your name, so when you come here again - do the same thing"

(“Jay, 이 위스키들은 네 이름으로 맡겨둘게.

다음에 네가 다시 이곳에 오면—— 오늘처럼 똑같이 해줘.”)

나: Pardon? (네??)

그 말은 단순한 인사나 격려가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이 일은 정식으로 내 몫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임원: You are the first Korean Brand Ambassdor for our brand! Congratlation. (당신이 한국의 첫 번째 브랜드홍보대사입니다.)


그 한마디는 내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고,

나는 미소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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