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그해 봄, 학교 석면 교체 작업이 있었다.
나는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두 겹으로 착용한 채
하루 종일 먼지 속에서 일했다.
코로나 시기.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썼다.
그건 법이었고, 선택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새벽 6시 전에 지하철을 탔다.
그 시간대에 타면 요금이 10% 할인됐다.
그 정도라도 아껴야 했고, 아낀다는 건 버티는 일이기도 했다.
지하철 안은 조용했고, 조금 무서웠다.
모자 위에 장난감 프로펠러를 달고
배낭에 태극기를 꽂은 남자가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탄핵된 대통령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은 흐렸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어떤 사람은 바닥을 보며 눈을 감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허공을 향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의 나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건
눈뿐이었다.
하지만 그 눈들 속에도
서로를 담을 여유는 없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게 되면, 건설현장 같은 곳에 잡부로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아르바이트 구직 앱등으로 첫 일을 구하게 됐다.
아무 기술이 없는 나는... 일당 7만 원 (2019년 기준입니다)
당일 지급도 아닌, 익일 지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실제 일을 시키는 곳에서는 11만 원 정도를 준다고 한다.
중간에서 업체에서 소개비 명목과 3.3%(원천징수소득세)를 떼고 나면 7만 원 수준이었다.
그 돈을 받을 생각만 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지금 내 몸값인가…’
그건 단순히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나는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라 여겨왔다.
몸을 쓰는 일이 하찮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설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몰랐다.
마스크 덕분에 다행이었다.
누구도 내 얼굴을 몰랐고,
내가 누구였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그 마스크 뒤에 숨고 싶었던 것 같다.
숨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것이다.
익숙해진 굴욕, 익숙해질 수 없는 마음.
하루가 다르게 손엔 굳은살이 배기고,
팔과 허벅지는 쑤셨다.
하지만 가장 아픈 곳은
마음 한구석의 빈자리였다.
이른 아침, 작업 현장 앞으로 모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서 있다 보면, 작업자 명단을 부른다.
“어이, 형님! 오늘도 나오셨네!”
건네는 인사 속엔
반가움보다 서로의 처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나갔다.
생활비는 매일 빠져나갔고,
누군가는 ‘가장의 무게’를 지고 있어야 했으니까.
시간이 지나며 몸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단 한 번도 편해진 적이 없었다.
주말이면,
“아빠, 오늘은 안 나가?”
딸의 무심한 말에 목이 메었고,
카톡 알람이 울릴 때마다
혹시라도 예전 동료일까, 예전 회사일까—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무의미한 기대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여기, 이 자리.
포기가 아니다. 받아들임이다.
이 글을 쓰며, 문득 오래전 써두었던
‘카페지옥’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2019년의 내가 겪었던 또 다른 생존기.
그 이야기를, 이제 2025년의 시선으로 다시 들춰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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