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 임부장에서 임씨로...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밖에 없는 일

by 제이림

‘임부장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임부장님 오셨습니까!’

그렇게 불릴 때면,

그 호칭이 나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직함은 책임이었고, 동시에 존재감이었다.

그 이름으로 나는 필요한 사람이었고,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온 뒤, 그 이름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나를 ‘임부장’이 아니라

‘임씨’라고 불렀고, 어떤 날은 아무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어이~!'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컨설팅의 모든 과정을 나 혼자 감당해야 했고,

그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메뉴 기획부터 공간 구성, 인테리어 조언, 동선 설계,

때론 마케팅 방향까지…

내가 다 해줘야 했다.


더 힘들었던 건,

정작 실행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것.

아이디어만 슬쩍 가져가고,

결국엔 ‘더 편하고, 더 싸고, 더 익숙한’

대형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걸 보면서,

한 번 더 현실의 벽을 느꼈다.

사람들은 새로운 걸 원하면서도,

정작 새로운 걸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도 점점 멈추게 됐다.

지쳐서, 허탈해서, 때론 조금… 서운해서.



컨설팅은 띄엄띄엄 들어왔다.

아이디어만 가져가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고,

결국 원스탑 쇼핑이 가능한 대형 프랜차이즈로 돌아서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다.

그렇게 수입은 들쑥날쑥했고,

생활비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일용직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처음엔 ‘잠깐만 버티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나는 점점 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찾게 되었다.

브랜드 매니저였던 손이,

이젠 현장에서 짐을 나르고, 땀에 젖는 손이 되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진짜 나’를 만나고 있었다.


다시는 ‘임부장님’이라 불리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 손에 쥔 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더 명확히 알려주고 있으니까.


#브랜드매니저의고백

#삶의전환점

#직함없는나

#현실과이상사이

#일과존재

#임부장에서임씨로

#다시시작하는중


keyword
작가의 이전글 #4. 김 한 장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