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한 구석을 정리하다가, 낡은 쇳조각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뉴욕 살던 시절, 내가 타던 차에 달려 있던 번호판이었다.
기억이 그 자리에서 터졌다. 그 번호판을 달고 맨해튼을 달렸다. 한밤중의 소호, 이스트빌리지의 허름한 골목, 심지어 무역센터 앞 길바닥에도 주차를 했었다. 그 도시는 날마다 살아 움직였고, 나는 그 속을덜컥거리며 달리는 낡은 차 안에 있었다.
그 번호판은 어쩌면 뉴욕주의 어느 교도소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를 죄수의 손으로 찍혀 나왔을지 모른다. 그렇게 내 젊은 날의 차가 완성됐다.묘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갇힌 시간을 타고, 나는 자유롭게 도시를 달리고 있었다.
1990년
머라이어 캐리가 데뷔했고, ‘나 홀로집에1’은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미국엔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한국엔 노태우. 서울에는 삐삐가 유행했고, 뉴욕 거리에도 페이저가 울렸다. 타워레코드 매장에는 CD가 빼곡했고,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해 한국은 지하철 3호선이 연장 개통됐고, 공중전화 앞엔 늘 줄이 서 있었다. 서울 택시 기본요금은 600원이었고, 거스름돈 100원쯤은 기사님께 자연스럽게 넘어가던 풍경도 익숙했다.
‘애플’은 있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에게는 그냥 ‘과일’로 더 익숙하던 시절. 서태지는 아직 세상에 없었고,
토요일 밤이면 ‘퀴즈 아카데미’의 시그널 음악이 흘렀다.
그 쇳조각 하나가 다시 내 손에 들린 순간, 그때의 공기, 소리, 젊은 날의 허세와 불안이 함께 되살아났다.
3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절은 아직 내 안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거다.
이제 그 번호판은 다시 벽에 걸릴 예정이다. 잊고 살았던 내 한 조각을 꺼내두는 마음으로. 그 시절의 내가 그 벽을 바라보며, 잠깐쯤 웃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쇳조각은, 내 젊은 날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