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이력 6

약의 무게만큼 무거웠던 하루

by 제이림


오늘은 대림동 어귀에 자리한 한 의약품 도매상의 이전 작업을 맡게 되었다. 5톤 트럭 8대 분량. 처음 들었을 땐 숫자 감이 안 왔지만, 막상 현장에서 박스 하나하나를 옮기다 보니 이 숫자가 몸으로 다가왔다. 무겁고, 끝이 없었다.


이곳은 제약회사로부터 약품을 도매로 공급받아 동네 의원이나 약국에 납품하는 중간 유통업체다. 오늘 우리가 옮긴 약품의 총액이 15억 원을 넘는다 들었을 땐, 박스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단순히 ‘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치료를 기다리는 소중한 약들이었다.


작업 공간인 창고엔 철제 앵글마다 약품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링거 수액과 주사제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 한 줄 한 줄이 작은 병원처럼 느껴졌다. 택배 상하차와 비슷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론 훨씬 복잡하고 신중을 요했다.


특히 ‘향정신성 의약품 보관소’라 쓰인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이 공간만큼은 단순한 이삿짐이 아니었다. 수량 하나하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누락 없이 정리해야 하는 예민한 구역. 이곳을 지나며 약이 지닌 ‘책임’이라는 무게를 다시 느꼈다. 약품을 다 옮기고도 수량을 정확히 확인한 후 그 방을 나올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3층짜리 새 건물. 지하부터 꼭대기층까지 짐을 옮기는 동선은 복잡했고, 짐을 기다리는 직원들은 동시에 정리에 들어가며 바삐 움직였다. 서로 말은 많지 않았지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협업의 리듬이 있었다. 의약품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정리를 했겠지만… 직원들도 꽤 힘들어 보였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짐을 덜 수 있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 주변 간판들은 모두중국어였고, 음식점 또한 대부분 그랬다. 그런데도 우리가 들어선 가게에서 시킨 건 제육볶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낯익은 위로가 느껴졌고, 입안에 들어온 익숙한 매운맛이 고단한 오전을 달래주었다. 중국인 아가씨가 내게 중국어로 말을 건네기도 했다. 내가 중국사람처럼 생겼나? 아마도 민머리에 진한인상이라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주변엔 대낮부터 수많은 중국인 손님들이 술판을 벌려 시끌벅적했지만, 맛있게 잘 먹고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고됐지만, 약이라는 것의 무게와 생명력,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물류의 세계를 가까이서 본 하루였다. 그리고 그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조용하게 나를 흔들었다. 이런 회사도 있구나 하는 짧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택배 하는 형님들… 고생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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