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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둘 Sep 20. 2015

나는 태양의 도시를 걸었다.

동행: 타국의 너와 나 / 2015_Europe, Madrid.

Spain, Madrid. 나는 태양의 도시를 걸었다.

(부제; 어디가 좋고 나쁘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드리드가 좋더라)



나에게 있어 스페인은 가우디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격자형 도시계획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의 길, 내가 꿈꾸던 길을 품은 나라. 

단지 그것뿐, 다른 어떤 느낌은 사실 없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하기 전,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여행을 떠나기 한 달여 전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책에 대해서 알게 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본
'나는 이베리아 반도는 정말로 꼭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남유럽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었고

늘 태양이 내리쬐는 도시들을 생각하니 발가락 끝이 꼼질거리곤 했다.


내가 다시 여행을 시작한 도시는 마드리드였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스페인의 수도라서. 그리고 내가 탄 K항공사의 최장 노선이기 때문이랄까.

처음에 리스본으로 바로 가고 싶었으나, K항공사에선 리스본까지 직항을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긴 노선이면서 스페인의 중심인 마드리드가 그나마 낫겠다 싶어서 마드리드를 in 도시로 정하고 비행권을 발권했었다.


마드리드를 간다고 했을 때, 듣는 사람들마다 위험하고 소매치기 많은데 꼭 '굳이 마드리드로 가야겠냐고',
'볼 것도 없는데 왜 마드리드를 가냐고', '차라리 바르셀로나를 가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예전 여행에서도 소매치기와 집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고, 파리에서도 많이 봤고,
당하는 사람들 또한 봤었다. 그 때도 나는 나만 잘 조심하면 안 당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굳이 출발하기
전에  내가 겁을 먹어가면서까지 내 여행의 첫 목적지를 나쁘게 생각하고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이들이 얘기해주는 마드리드에 대한 악담들은 귓등으로 퉁퉁 듣는 둥, 마는 둥 했었다. 






새벽 어스름이 가득찬 공항


첫 차를 기다리며.


새벽 4시 반에 도착한 마드리드는 조용했다.

공항은 우리처럼 새벽 비행기도 도착한 사람들만 가득 했었고, 그마저도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러 가서
남은 건 나와 내  친구뿐이었다. 일단 시내로 가야 한다며 지하철을 타러 갔으나 운행은 5시가 넘어서 시작하기
때문에 표를 끊고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처음 내가 공항의 지하철역에서 느낀 첫 번째 마드리는 그냥 원색적인, 조용한, 아무 느낌 없음이었다. 




공항에서 첫 차를 타고, 1호선으로 갈아탄 뒤 솔(sol) 역에서 내렸다. 

역에 내려서 호스텔로 가기 위해 올라오는데 스페인 양아치 애기들이 앉아서 'Hola', 'Ciao', 'Chinese' 하며
크크 거리고 있던 모습을 마주한 것이 나의 마드리드에서의 두 번째 느낌이었다.


      '아, 어딜 가나 새벽에는 이런 애들이 있구나. 으으. 결국 악담이 현실이 되는 구나.'


하며 솔 광장으로 올라왔을 때,


여명으로 가득 찬 솔 광장을 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입김이 나오는 새벽 추위에, 아무도 없이 텅 빈 솔 광장과 
빛을 잃었으나 여명을 업고 우뚝 선, 도시에 가득 매달려 있는 조형물들. 

순간 설렘과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하면서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해졌다. 


       '내가 정말 여행을 다시 시작하긴 했구나.'


솔 광장으로 오는 내내, 14시간의 비행으로 지쳐 있었던 터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오직 솔역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명으로 가득 찬 솔광장. Puerta del Sol.



우리는 추위와 허기짐도 잊고 사진을 찍었다.

입김이 나와도 좋았고, 호스텔이 어디 있는지는 상관없이 여명 아래에서 우리는 물 만난 고기마냥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사진 찍던 우리는 허기와 추위를 느끼며 맥도널드에 들러 맥모닝 메뉴를 시키고 앉아서 호스텔이 열릴 
7시를 기다렸다. 7시가 되기 무섭게 호스텔로 가서 짐을 묶어 두고 라운지에 앉아서 여독을 풀 틈도 없이
우리는 빨리 나가자며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스텔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솔 광장은 아침부터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걷고 있는데 미화원분이 오더니 가방을 가리키면서 스페인어로 막 뭐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뭘 잘 못했나싶으면서 한편으론 
미화원분이 '소매... 치.. 기.....?'(이건 정말 나쁜 생각이었다) 이러면서 당황스러웠고 이해를 못해 겸연쩍게 웃으면서 쳐다보니, 직접 본인의 겉옷을 들고는 가방끈 흉내를 내시고 겉옷을 내리셨다.


  
                             '아! 소매치기가 많으니 겉옷 안으로 가방을 메고 다니라는 뜻이구나.'


오해했던 내가 무색하게 그분은 내가 'Gracias!'를 외치기도 전에 웃으면서 떠나가셨다.

이렇게 좋은 분이 있는데 왜 다른 이들은 마드리드가 좋지 않다고 했을까. 


사실 아침에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너무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체크인을 하려는 우리를 보며 

스텝은 잘 왔다고, 힘들었냐며 체크인은 못해주지만 가방은 맡길 수 있다며, 방긋 방긋 웃었고 
조식을 먹은 우리에게 조식이 필요 없다면 라운지에서 쉬어도 된다며 방긋방긋 웃으면서 우리를 안내해줬다.


서비스업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친절함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다.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스텝들의 호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살고 있는 곳을 여행하고 
여러 곳의 호스텔을 다녀봤을 때 스텝의 친절함은 차별적이고 누구냐에 따라 달랐다. 

이 때 내가 받은 호의는 정말 큰 것이었다. 소규모의 호스텔을 제외하고 체인인 호스텔에서는 이러한 친절함을 느끼기는 조금 어려웠었다. 내가 여행 이후에 이러한 느낌을 더 크게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행 중반에 뮌헨에서 묵은 호스텔에서 나는 최악의 스텝을 만났었고, 내가 돈을 냈지만 돈을 낸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었다. 나는 남은 일정을 뒤엎고 환불을 요구해서 받고(안 해주려고 했었다) 새벽 내내 잠 한숨 못자고 뜬 눈으로 라운지에서 찬바람을 맞으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도망자처럼 잠든 이들 사이에서 짐을 싸고 역으로 갔고, 빈으로 가는 첫 기차를 타고 뮌헨에서 도망치듯 떠났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의가 넘치는, 정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도시인데 왜 다른 사람들은 마드리드가 싫다고 했을까.







마드리드는 오래된 고건물들과 현대식 건물들이
섞여있다. 대부분의 유럽 건물들이 그렇듯
겉은 고건물이고, 속은 현대식으로.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건, 구식과 현식, 

그러니까 최신식 건물들과 고건물들 간의 괴리가

적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고건물들은 늘 외관 공사를 통해서 한결같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예전 것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라에서 오래된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돌보는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한옥마을, 북촌 같이 도심 내에서 한옥을 유지하고 지키려고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도 많고
오히려 반대로 아파트 단지만 우후죽순 생기는걸 보면 유럽에 비해 이러한 점들이 아쉽다고 느끼곤 한다. 


'유럽의 고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멋이 있듯,
우리나라의 한옥 또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멋이 있는데 더욱 살릴 방안은 없을까.'
 싶었다.






솔 광장을 벗어난 우리는 쭉쭉 걷고 걸었다. 

집인 것 마냥 지도를 달랑 달랑 거리면서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유명한 하몽집도 지나가고(나중에 맛을 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마싯졍, 그러나 호불호 엄청남. 친구는 맛 없다고 해서 혼자 폭풍흡입..) 법원 같은 건물도 지나가고, 엄청 큰 복합매장도 지나가고. 넓은 대로를 쭉쭉 걷다 보니 프라도 미술관이 나왔다.

햇빛을 내리받는 곳에서 고야는 굳건히 프라도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프라도 미술관, 레티로 공원, 솔 광장 그리고 소피아 미술관.

특히나 나는 소피아 미술관 내의 작품들이 너무 좋았고, 프라도 미술관의 고야의 작품 또한 좋았으나 

프라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스페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 푸르름.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햇빛이 내리쬐는 프라도 미술관 옆 악사.


여기저기해가 내리쬐는 곳마다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 거리의 악사들, 여전히 푸르름이 있는 곳.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비행 내내 가졌던 두려움과 아침부터 느낀 피곤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마음마저 따뜻해지고 그들 사이에서 나와 친구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언제 이렇게 해를 쬐고 있었지. 이렇게 해를 쬔 적이 있었나.'






나의 사랑도 이들 같길.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저 곳에서 먼 발치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서 계셨다. 

어느 순간, 할아버지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을 때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온 할머니와 마주하는 순간,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따듯한 키스를 선사했다. 

포옹과 함께.


이 얼마나 로맨틱하고 아름다운가.


마드리드를 도는 내내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커플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이었으면 이게 무슨 짓인가...'
라고 생각했겠지만 서스름 없이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맘껏 표현하는 사람들이 못내 부러워졌다.




우리는 이 때부터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버릴 건 버리면서 걸어 보자고 약속했다.

해가 쬐고 싶으면 길에 앉아 해를 쬐고, 쉬고 싶으면 무작정 앉아서 쉬기도 하면서 조급해하지 않았다.
조급함을 버리려고 했다는 게 어떻게 보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남들이 다 보는 거 다 보지 못하더라도 그냥 순간 순간 우리가 즐겁고, 우리가 신나면 된다고.
이 사람들의 삶 속에 우리가 들어가보자고. 









우리는 마드리드에 머무른 꽉 찬 이틀 동안 큼직큼직한 건물들과 대로와 사이사이 나있는 샛길들을 
미로 탐험하듯이 걷고 걸었다. 모르는 길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직진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걷기.


우리는 그렇게 마드리드를 걸었다. 그렇게 유명한 시장도 갔다가, 샛길로 가다 보니 나온 성당에서 기도도 하고 대성당에 가서 그 크기에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가 왕궁으로 가서 새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오후에는 솔 광장에서 그랑비아 대로를 걸어 레티로 공원을 하염없이 걸어서 아토차역에 가서 일을 보고
역 앞의 소피아 미술관에 가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입을 떡 벌리고, 순간 순간 느낀 감정들을 끌어안고
'떠나기 싫다.'라는 마음과 함께 발걸음을 옮겨 숙소로 돌아왔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사방이 빨간 벽으로 둘러싸여있고 자유를 외치는
작품들로 가득했던 방.

나는 이 방에 들어섰을 때 정말 할 말을 잃고 작품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냥. 그랬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눈가가 괜스레 시큰거리고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다.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찍으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내가 이 작품이 지닌, 가지고 있는 이 감정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을지. 이 순간마저 왜곡될까 겁이 났다.


여전히 이 작품이 전시되었던 방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이틀 내내 산미구엘 시장에서 하루의 피로를 달래 줄 맥주 한잔과 타파스를 먹으면서 하루를 되새기곤 했다. 떠나기 싫다며, 가기 싫다며. 


'왜 마드리드가 안 좋다고 했을까' 

하며 부른 배를 통통 퉁기며 마요르 광장을 찍고 솔 광장으로 하염없이 걸었었다.


마드리드의 밤은 누구보다 활기차고 아름다웠다.

태양의 도시 아니랄까 봐, 모든 사람들이 태양과 같은 밝음을 가지고 있었고 흥을 즐겼다.





마드리드에서 2박 3일 있는 동안, 우리는 마드리드 시내의 반 이상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는 시간 동안 우리가 느낀 것과 후에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뒤에 느낀걸 함께 생각해본다면, 


'누구나 여행하는 도시에서 받는 느낌들을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가 좋고 나쁘고, 이러한 느낌들은 개개인들이 마주했던 상황에 기인하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되고, 그 느낌들이 단편적인 도시의 이미지가 된다는 것이다. 도시의 호불호를 나눌 때,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나는 마드리드가 좋았고, 다시 갈 의향 또한 있으며 여전히 여명이 가득 찬  그때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비교했을 때, 나는 무조건 마드리드겠지만. 크크.






나는 태양 아래에 있었다.

늘 태양 아래에 있었지만, 겨우내 이렇게 뜨겁게 해를 쬐었던 적이 또 있었을까. 

포근히 감싸 오는 태양 아래에서 나는 오래된 그리고 이미 퇴색돼버린 지난 것들을 내려 놓았다.

나는 그렇게 다시 여행을 시작했었다.


잊을 수 없는 태양 빛으로 가득 찬, 태양의 아래를 걷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녹지 않았고, 퇴색돼버린 지난 것들을 다 내려놓았고 그 아래에서 나는 편안해졌다.

편안했다. 시간이 멈추길 바랬고 조금 더 뜨거워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부족했고 모자랐지만, 그대로도 나는 즐거웠다.

시름들을 내려놓은 내가, 온전했던 내가 편안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어떠한 일에도 나는 시름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랬다.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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