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가 필요 없던 당신.
당신과 나는 찬기운이 남았던 계절의 끝자락에 만났지.
무슨 말이 필요없던 특별한 과정을 생략한 사이였어.
당신과 나는 그렇게 만났고 깊지만 깊지 않은 사이가 됐어.
나도, 그리고 당신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처럼 우리의 마지막은 빨랐어.
시작처럼, 안되는 관계를, 꼬인 실을 길게 늘어뜨려 만났었기 때문이지.
우리에겐 사실 선택지가 없었어.
안되는 선택지를 만들어 관계를 만들었고 외줄타기를 하듯 그 관계를 이어갔으니.
마지막을 전하는게 당연했어,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
그래도 마지막을 전하는 나에게 당신은 덤덤히 마무리를 짓도록 배려했어.
후에, 내가 편해졌을 때.
당신 곁에 그 누구도 없다면
당신에게로 돌아오라고.
아직 나는 기억해.
그 때의 설렘을.
서툴던 당신의 손끝하나,
수줍게 웃음짓던 당신을.
당신과 함께 했던 곳의 앞을 지날 때마다
당신과 들었던 노래, 나눴던 대화.
마지막까지 전하던 나의 안부에 관한 이야기까지.
돌이켜보면 당신에겐 나밖에 없었네요,
이제야 느껴.
신경쓸 것이 많았고
적응하지 못하고 서성이던 나를
올곧게 서서 지켜보던 당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