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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s Apr 24. 2023

살아보니 행복은 그리 크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더라

나의 삶, 딸과 아들 그리고 가족

살아보니 언제나 삶의 행복은 그리 크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항상 있었더라


오늘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장모님 댁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왔다. 약간의 언덕과 내리막길 그리고 총거리의 절반정도가 평지인 코스를 약 20여분 달리다 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


핫 플레이트에 값싼 와규를 굽고 야채를 듬뿍 넣은 야끼소바를 볶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한국의 동물농장 같은 텔레비전 쇼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어느 센가 날씨는 저녁 아홉 시가 다 되어도 반팔에 얇은 카디건 하나 걸치면 충분한 계절로 바뀌어 있었다. 엊그제 두꺼운 잠바를 걸치고 출퇴근 전철에 올라탔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아무 생각 없이 한낮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선 슈퍼에 장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 녀석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나 나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장모님 댁에 저녁을 먹고 올만큼이나 컸구나 하고 갑작스럽게 아이들의 성장이,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 오늘.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자라준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나와 내 아내를 어떻게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마음처럼 행동으로 전달하지 못했던 부모를 어른이 되어 이 글을 읽게 되었을 때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 마음을 남겨본다.


나도 너희들처럼 나 스스로가 나를 인지하지 못했을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나만을 위해서 살아왔었던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어버이날 학교에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시간에 옆에 앉은 친구 녀석과 똑같이 만들어 준비한 종이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며 나는 내 삶을 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나조자 이해할 수 없었던 사춘기 시절, 부모님께 수많은 상처를 남기고 군대에서 행군하던 늦은 밤 부르던 노래자락 속에서 튀어나온 어머니란 단어에 가픈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렸다. 땀냄새와 죄송함이 범벅이 되어 끝까지 쓰지 못한 편지한 장은 아직도 신발상자 속에 구겨 넣어진 채 나는 또 내 삶을 살기 위해 어른이 되었다.


학벌이 좋아서, 집안이 좋아서, 재능이 좋아서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하는 엄마친구 아들들을 보면 열등감에 등 떠밀리듯 자아를 찾아서라는 외마디 변명을 외치며 나는 또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었다.


그렇게 떠난 타국에서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운명처럼 배우자를 만나고 우연처럼 직장에 들어가고 은근슬쩍 그러보던 가정을 어엿하게 꾸리고 너희들이 태어나며 그렇게 나는 부모가 되었다. 가까운 타지에서 떨어져 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발버둥 치며 처음 하는 아빠노릇에 매일이 힘에 부치지만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큰 사고 없이 이렇게 살아왔다.


내 나이 어느새 마흔. 

너희들도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에서도 이제는 신입 때만큼 처절하게 싸우며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노련해진 오늘. 너희들과 자전거를 타고 장모님 댁을 떠나 우리 집으로 가는 중간쯤의 터널을 지나오며 갑자기 부모님 생각났다. 나만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 그리고 엄마, 나만을 위해 지금까지 산 나. 죄송스럽고 감사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너희들 생각이 났다.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고 나처럼 위와 같은 생각을 똑같이 한다면 그걸 알게 된 내 마음은 어떨까 하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해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지금에 와서 보니 사랑하는 여자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까지 생겼다.

아빠가 처음인 나에게 선물처럼 태어나준 두 아이가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내 손에서 아무 일 없이 자란 준 것도 너무 감사하며 세상 속에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보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서로가 가까이 있지 않아도 자연스레 배터리가 100% 충전이 되었다.


어설프고 모르는 것투성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몇 가지 되지 않는 조그마한 사람인 너희들이 나를 친구처럼 안아주고 바라봐줄 때면 이 세상 어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신감이 생겼다. 계획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아내와 싸우거나 일이 좀처럼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에도, 인생이 너무 힘들어 하루를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항상 나를 보면 웃는 너희들을 볼 때면 일그러진 얼굴의 주름살을 펴고, 쥐어뜯었던 머리카락을 다시 쓸어 넘기고, 주저앉았던 다리를 다시 고쳐 세워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너희들이 없었으면,

너희들이 만들어낸 웃음과 행복의 분량만큼의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까지 셀 수 없이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들을 나 혼자 넘어설 수 없었을 것이며

지금의 너희들보다 더 어린아이처럼 세상에 지쳐 허우적거리며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나에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에게 주었고 너희들이 성장해 가는 하루하루 덕분에 내 삶도 너희들과 같이 성장했다.


너희들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을 나에게 선물로 준 너희들에게 내 삶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다. 그러니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너희들이 나에게 준 것처럼 앞으로도 너희 삶이 빛날 수 있게 살아줬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 순 없겠지만 언제까지나 그 누구보다 더 너희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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