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세상은 무대이고, 사람은 모두 배우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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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징은 인간의 삶을 무대와 배우에 비유한다는 것이다.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의 2막 7장에서 다음 대사를 눈여겨 볼만하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남자와 여자 모두는 단지 배우일 뿐이다.


인간의 삶은 무대 위의 연극처럼,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할을 끝내고 퇴장하듯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위 대사에 이어진 내용을 좀 더 알아보자.


옛공작: 알고보니 불행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로구나. 이 넓은 세계의 무대는 우리가 연기하는 장면보다 한결 더 비참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구나.

제이퀴즈: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고, 남자와 여자 모두는 단지 배우일 뿐입니다. 한 남자는 살아있는 동안 여러 역을 맡아가며 등장과 퇴장을 거듭하는데, 일생은 7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기로서 유모 팔에 안겨 앙앙 울고 침을 질질 흘리곤 합니다. 다음은 투덜거리는 소년인데, 아침에는 햇살을 가득 받은 얼굴로 달팽이 기어가듯 마지못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갑니다. 그 다음은 연인. 용광로같이 한숨을 쉬며 애인의 이마에 두고 슬픈 노래를 짓습니다. 다음은 군인인데 기묘한 맹세들을 늘어놓으며 표범같이 수염을 기르고 명예를 얻고자 열망하여 번개처럼 재빠르게 싸우며, 물거품 같은 공명을 위해서는 대포 아가리에라도 뛰어듭니다. 그리고 다음은 법관으로, 살찐 닭을 뇌물로 받은 덕분에 배는 제법 나오고, 눈초리는 무서우며, 격식대로 수염을 기르고, 지혜로운 격언과 진부한 문구도 많이 익혀, 이렇게 자기 역을 충실하게 맡아합니다. 그런데 제 6막에 들어서면 슬리퍼를 신은 말라빠진 어릿광대로 변하는데 코 위에는 안경을, 허리에는 돈주머니를 차고, 젊은 시절 간직해 둔 긴 양말은 말라빠진 다리에 너무 크고, 사내다운 굵직한 목소리는 아이 같은 높은 목소리로 되돌아가 피리같이 삑삑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파란 많은 이 일대기의 마지막 장면은 두 번째 어린아이랄까, 오직 망각이 있을 뿐, 이도 없고 눈도 없고 입맛도 없고 모조리 무로 되돌아 갑니다.


이 대사를 계속해서 읽고 있노라니 삶의 무상함, 인간 존재의 순간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위 대사는 인생의 단계에 맞는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인간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이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일까? 나부터도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하는 삶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싶다. 내 안에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감성을 키워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내면의 성장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은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가 되어선 안되고 그 역할과 시스템을 넘어서 존재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한 삶은 자발성과 창조성, 내면의 자유에서 나온다.


인생의 각 단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에리히 프롬의 관점에서는 소유적 인간이다. 소유적 인간은 각 단계에 맞는 역할을 준비하고 그 단계에 맞는 것을 성취하고 소유하려 한다. 주어진 단계의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 매우 전전긍긍하고 초조해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예기치 않은 이변이 일어나기도 하고, 미리 대비하거나 무장하지 않고서도 기탄없이 응답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어서 삶에 활기가 넘친다. 이런 인간은 존재적 인간이다.


미리 대비하거나 무장하지 않고 자발적이고 생산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태도는 이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망각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자신의 지위를 잊어버린다. 그의 자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런 연유로 인해서, 상대방과 상대의 생각에 맞서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세울 수 있다. 그는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을 탄생시킨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 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59)


많은 작가, 시인, 예술가들이 소유적 삶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삶을 위한 고군분투를 작품에 표현 해왔다. 예를 들어, 찰스 디킨즈는 『Hard Times(어려운 시절)』이라는 소설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사회를 풍자했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사실(fact)만을 가르치려 하는 그레드그라인드의 교육은 매우 억압적이다. 루이자와 톰은 감정없는 존재로 성장하고 나중에는 도덕적 혼란, 정서적 고립에 빠진다. 노동자들은 이름도 개성도 없는 부품과 같은 존재로 치부된다. 감정과 도덕, 상상력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찾아야 할까? 작가는 본질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대학때 공부했던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late and soon,

Getting and spending, we lay waste our powers;—

Little we see in Nature that is ours;

We have given our hearts away, a sordid boon!

This Sea that bares her bosom to the moon;

The winds that will be howling at all hours,

And are up-gathered now like sleeping flowers;

For this, for everything, we are out of tune;

It moves us not. Great God! I’d rather be

A Pagan suckled in a creed outworn;

So might I, standing on this pleasant lea,

Have glimpses that would make me less forlorn;

Have sight of Proteus rising from the sea;

Or hear old Triton blow his wreathèd horn.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벅차다-예나 지금이나

얻고 쓰느라, 우리는 우리 힘을 낭비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우리 것이라 할 만한 것을 거의 보지 못한다.

우리는 마음을 팔아버렸다, 천박한 대가와 맞바꾼 채!

바다는 달에게 가슴을 드러내고,

바람은 밤낮으로 울부짖지만

지금은 마치 잠든 꽃처럼 잠잠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서 멀어져 있다.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한다.—오, 위대한 신이여! 차라리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신앙을 가진 이교도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아름다운 초원에서

덜 외롭도록 신비한 존재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을 텐데.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프로테우스의 모습을 보거나,

고대의 트리톤이 조개 나팔을 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시집을 꺼내 이 시를 읽어보니, 그 의미와 감동이 새롭다. 우리는 그동안 소유적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힘을 낭비해 왔다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다보니 벅차게 느껴진다. 소유적 인간의 관점에서는 자연은 소유해야 할 대상일 뿐이며,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한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현대인의 삶은 점차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자연과의 단절은 상상력과 감성의 부재를 의미하고, 존재적 삶에서 멀어짐을 의미한다. 시인이 얼마나 존재적 삶을 갈망하는지 보인다. 그는 존재적 삶 속에서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상상력을 회복하여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프로테우스"도 보고 싶고, "고대의 트리톤이 조개 나팔을 부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As you like it" 내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권력, 명예를 쫓지 말고 사랑의 힘을 믿고 그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존재론적 삶에 참 어울리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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