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찬란한 것들은 너무 쉽게 혼란에 빠진다

Quick bright things come to confusion.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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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내가 너무 좋아하는 희곡이다. 문학 비평가인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대해 "단 하나의 결점도 없는,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걸작"이라고 평가하며 높은 작품성을 인정했다. 해럴드 불룸의『영향에 대한 불안』을 읽어보지 않은 영문학 전공생은 없을 정도로 그의 비평은 영문학계에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이 희곡을 결점이 없다고 평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희곡 중에서 매우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매번 읽을때 마다 그렇다. 대사의 흐름, 다양한 비유의 말, 콕콕 박히는 언어, 이 모든 것이 매끄럽다. 거기다가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까지.


라이샌더, 허미어, 드미트리어스, 헬레나 등 그들이 사는 아테네 인근 숲에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가 살고 있다. 오베론은 요정 퍽을 시켜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어지도록 잠자는 눈꺼풀에 꽃즙을 바르라고 시키지만, 장난꾸러기 퍽은 그만 꽃즙을 잘못 바르면서 일이 더 꼬이고 만다. 꽃즙을 바른 사람이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베론은 아테네 아가씨가 경멸에 찬 청년(드미트리어스)을 사랑하고 있으니 그의 눈에 꽃즙을 칠해 그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명하지만, 숲에서 발견한 라이샌더를 드미트리어스로 착각하여 그의 눈에 꽃즙을 바른다. 퍽의 행동이 안타깝지만, 항상 실수투성이인 우리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연민도 느껴진다. 잠들어있던 라이샌더와 허미아를 발견한 헬레나는 혹시 이들이 죽은게 아닐까 걱정되어 라이샌더를 우선 깨우는데, 라이샌더가 눈을 뜨고 먼저 본 사람은 헬레나였으니 꽃즙의 효과로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요정들의 세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티타니아도 오베론의 계략에 의해 그녀의 거처에 들어온 광대를 사랑하게 되는데, 광대는 당나귀 머리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베론이 광대 바텀의 머리에 당나귀 얼굴을 씌었기 때문이다. 오베론은 퍽이 일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해 보는데 엉뚱한 인물에게 꽃즙을 바르게 된 것을 알고 다시 드미트리어스에게 꽃즙을 바른다. 그런데 드미트리어스가 눈을 뜨고 먼저 헬레나를 보게 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됐지만, 헬레나는 졸지에 두 남성에게 구애를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허미아는 기뻤을까? 오히려 두 남자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라 여기고 크게 분노한다. 이처럼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읽다보니 주목하고 싶은 대사가 있다.


사랑은 소리처럼 순간적이고, 그림자처럼 재빠르거든.

그리고 꿈같이 짧고, 어두운 밤의 번개처럼 순간에 하늘과 땅을 드러내곤,

"저봐!"하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암흑의 아가리 속에 묻혀버리거든.

찬란한 것들은 너무 쉽게 혼란에 빠져 버려.


『한여름 밤의 꿈』1막 1장에 라이샌더(Lysander)가 허미아(Hermia)에게 말하는 대사이다. 짧지만 아름다운 순간은 얼마나 쉽게 깨지고 빨리 사라지는지 한탄하는 말이다. 라이샌더의 이 말,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복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허미아의 아버지 이지우스는 그녀가 좋은 가문의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라이샌더와 허미아는 아테네에서 20마일쯤 떨어진 곳에 살기 위해 밤에 몰래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아테네의 법을 거론하면서 딸은 반드시 명문가 남자인 드미트리어스와 결혼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하니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의 위기는 가문의 차이, 나이, 가족들, 전쟁, 죽음, 질병과 같은 훼방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위기는 당사자들의 변심이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림들의 진실된 마음이고,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 마음이란 "어두운 밤의 번개"처럼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드미트리어스가 허미아에게 빠져 있는 것을 한탄하는 헬레나의 대사를 보면 이 점이 잘 보인다. 드미트리어스는 허미아를 보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헬레나만 사랑한다고 맹세했지만, 그 사랑의 맹세와 헬레나에 대한 마음은 쉽게 변절해 버리고 말았다.


"흔히 장난꾸러기들이 일부러 맹세를 안 지키듯이, 사랑의 신 큐피드도 곳곳에서 거짓말만 하거든. 드미트리어스도 허미아의 눈을 보기 전까지는 자기 애인은 오직 나뿐이라고 맹세를 우박처럼 퍼부었으나, 허미아에게 열정을 느끼더니 우박같은 맹세도 그만 녹아버렸지."


그러니 "찬란한 것들은 너무 쉽게 혼란에 빠진다"는 말은 헬레나가 드미트리어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자신에게 우박처럼 퍼부었던 사랑의 맹세는 헬레나에게는 매우 찬란한 말들이었지만, 드미트리어스가 다른 여인을 사랑한 순간 그 우박은 순식간에 녹아버렸고, 마음은 더욱 혼란스럽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빨리 변하는지, 요정 퍽의 실수로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 라이샌더가 허미아에게 쏟아내는 막말들을 보면 그 속성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온갖 나쁜 것을 다 끄집에 낸 듯한 막말들이다.


허미아: 라이샌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라이샌더: 비켜, 이 깜둥이 계집 같으니!

허미아: 가면 안돼요. 가면 죽어요!

드미트리어스: 아냐, 아냐. 이자는 괜히 이러는 거야! 얼마든지 따라오는 시늉을 해보렴. 하지만 실제로는 따라오지 못할걸. 너 같은 쓸개없는 녀석이, 어디!

라이샌더: (허미아에게) 놔, 이 고양이 같은 것아, 놓으라니까, 안 놓으면처럼 내동댕이치고 말 테다.

허미아: 왜 이렇게 난폭해졌어요? 왜 이렇게 변했나요? 나의 라이샌더?

라이샌더: 나의 라이샌더라고? 저리 비켜, 깜둥이 계집 같으리! 비켜, 보기 싫은 독약 같은 것!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저리 가버리라니까!

허미아: 그거 농담이죠?

헬레나: 아무렴, 농담이지 않고, 너도 농담이고.

라이샌더: 드미트리어스, 대장부의 약속을 지키겠다, 자 가자.

드미트리어스: 너의 진짜 보증이 있어야지. 그러나 보아하니 여자의 손이 널 붙들고 있구나. 난 빈말만 가지곤 믿지 못하겠다.

라이샌더: 아니, 그럼 허미아를 쳐 죽이란 말이냐? 밉긴 하지만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허미아: 아니 밉다고요? 그보다 더한 모욕이 어디 있어요? 내가 밉다고요? 왜요? 아! 그게 무슨 말이죠? 나는 허미아, 당신은 라이샌더가 아닌가요? 나는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아름답잖아요? 어제저녁만 해도 당신은 나를 사랑하셨는데 밤중에 나를 버리셨군요. 아, 정말 나를 버리셨나요? 아, 분해라!

라이샌더: 아무렴, 내 목숨에 걸고 단언하지! 이제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아졌어. 그러니 희망을 버리고, 의심이나 의혹을 품지 마. 이건 정말 진실한 이야기야. 농담이 아니야. 나는 당신이 싫어졌어. 오늘 나는 헬레나를 사랑하고 있어.

...

라이샌더: 가버려, 난쟁이 같으니! 꼬마 같으니, 키가 작아지는 풀을 달여 먹었나! 묵주 구슬, 도토리 같은 것.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변심에 상처받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그 사람과 인간적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찬란한 것이 빠르게 사라져서 혼란스러웠던 것들도 질서를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 우리 삶인 것처럼, 흭곡에서도 그들의 관계도 안정을 찾는다. 물론 극에서는 요정의 왕 오베론의 덕택이긴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도 오베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오베론은 티타니아를 원래대로 돌려두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요정 퍽도 네 남녀의 사건을 수습한다. 퍽은 싸우러 나가는 두 남자 주변에 안개를 만들어 잠들게 한 후 라이샌더의 꽃즙 효과를 없애버린다. 라이샌더와 허미아, 드리트리어스와 헬레나 두 커플을 제대로 이어준 것이다.


블룸의 말처럼 이 작품은 인간세계(아테네), 요정 세계(숲), 그리고 극중극(장인들의 연극)이라는 세 개의 층위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구조적으로 매우 균형있고 안정감있게 보인다. 서브플롯이 메인플롯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서로의 이야기를 비춰주고 관객들에게 울림을 준다. 요정 퍽은 장난기 많고 개구지지만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통찰이 담겨있다. 실수와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인간들, 어리석음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지 않는가.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깊이 있게 들여다 보았는지 새삼 다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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