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I know thee not, old man.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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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I know thee not, old man.


<헨리 4세, 2부>의 제 5막 5장에 나오는 대사이다. 역사 드라마나 역사를 다룬 영화에서 자주 들었던 대사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베르사유>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루이 14세는 잘못을 저질러서 눈밖에 난 신하들 앞에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로 그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권위를 세운다. 이는 신하들과의 단절을 공표하는 엄청난 발언이다. 어떤 신하가 이 말을 들었다면, 이는 왕의 총애가 사라졌다는 것, 더 이상 너는 왕의 신하가 아니라는 뜻이다. 왕이 자신과 단절을 선언했으니 이는 존재에 대한 부정과도 같은 말이었다. 왕의 말은 모든 신하들이 들어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말이었으니 다른 모든 신하도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왕에게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다른 동료 신하들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했고, 결국 그는 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셰익스피어 사극, <헨리 4세 1부, 2부>에서 다시 읽게 됐다. 팔스타프(Falstaff)는 어떤 사람이기에 헨리 5세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야 했을까? 그는 재치있고 말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대화할 때 항상 유머와 기지가 넘친다. 대화가 즐겁다면 누구라도 이런 사람을 가까이 두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방탕한 기질도 있어서 술집을 자주 드나들며 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빚을 지고도 심지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또한 꾀도 많고 겁쟁이다. 전쟁터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을 구하려 하고, 자신만의 말재주와 핑계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전쟁터에서 다른 사람이 죽인 시체를 자신의 공으로 주장하기까지 한다. 종합하자면 그는 관객에서 웃음과 씁슬한 감정을 동시에 주는 인물이다. 재치와 유머가 있어서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동시에 허풍과 나약함을 지닌 인간적인 모순을 같이 갖고 있는 인물이다.


팔스타프는 기사도 정신에 어긋나는 인물이다. 기사에게는 명예가 매우 중요한데 팔스타프는 명예는 사람을 살리지도 못하고, 다친 상처를 낫게 해주지도 않는 바람같은 소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5막 1장에서 팔스타프는 전투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벌어질 어떤 일의 상징과도 같은 말이다. 왕이 된 할 왕자에게는 명예와 왕으로서의 책임과 권위가 중요한데, 팔스타프는 전투를 앞두고 명예가 무가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두 인물의 대립이 예견된다.


“명예란 무엇인가?

명예가 사람을 살려주나?

명예가 다친 상처를 낫게 해주나?

명예는 단지 이름일 뿐이다.

바람 같은 소리일 뿐이다.

죽은 사람을 살려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명예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왕자가 헨리 5세로 즉위하자 이를 축하하러 팔스타프가 찾아온다. 자신의 친구가 왕이 됐으니 팔스타프는 자신의 출세를 부탁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헨리 5세는 팔스타프에게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는 말을 건넨다. 이 말은 더 이상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아니며, 너 같은 사람은 내 삶에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할 왕자는 왕이 되자 팔스타프를 모른다고 한 것일까? 헨리 5세로 즉위한 할 왕자는 왕자 시절에 팔스타프와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팔스타프는 왕자의 방탕한 청춘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헨리 5세로 즉위한 순간, 더 이상 그는 방탕한 시절의 왕자가 되서는 안된다. 팔스타프와의 결별은 이제 그가 방탕한 젊음을 버리고 왕으로서의 책임과 위엄을 선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팔스타프 개인에게는 매우 냉정하고 상처받는 말이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결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왕다운 책임과 품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상징적 의미라 할 수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왕으로서 새출발을 하겠다는 선언의 장면이다.


할 왕자의 변화는 이해할 만하다. 그는 지금까지 팔스타프와 어울리며 겉으로 방탕한 생활을 해왔지만 속으로는 책임감있는 왕자로서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했다. 국가를 통치할 왕이 방탕한 생활과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팔스타프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서운하고 가슴아픈 일이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믿었던 친구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왕자였던 시절에는 그를 즐겁게 해주었던 희극적인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버림받은 비극적인 인물로 전락했다. 그가 느낀 배신감, 슬픔은 어땠을까? 이렇게나 권력이 냉혹하다니. 그는 일면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래서 베르디 또한 <팔스타프>라는 오페라 곡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도 베르디는 그의 삶을 비극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많은 웃음을 주고자 했다. 운명, 배신, 사랑, 죽음 등으로 점철된 삶에서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한 인물의 모습이 참 먹먹하다.


팔스타프의 말은 가벼운 말들로 치부할 수 없다. 그가 한 말 중에 그 어떤 인물들보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대사들이 많다. 다음의 대사는 팔스타프가 한 말 중에 의미있는 말이다. 3막 2장에서 팔스타프는 전투 중에 무모하게 싸우는 대신에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도망치려 하면서 이 말을 한다. 전투 중에 도망치는 것, 살아남는 이 지혜로운 용기라는 것이다. 용기의 진정한 본질은 과감함이 아니라 신중함임을 강조하고 있다.


The better part of Valour, is Discretion.

용기의 더 나은 부분은 신중함이다.


비극적인 인물로 끝나고 있지만 삶을 즐기고 웃음을 주는 매력적인 인물로서 충분히 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역사극에서도 어리숙하고 모자라 보이는 인물, 광대들을 통해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들을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사를 통해, 절대적인 진리나 영웅은 없으며 진리라는 것도 주어진 상황에서 그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나온 대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고 한 헨리 5세의 말은 그가 할 왕자였던 시절에 팔스타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는 "나는 너를 잘 안다."였을 것이다. 이 말은 팔스타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헨리 5세가 왕자였던 시절에 그들이 방탕하게 지내는 동안 팔스타프는 "저는 왕자님을 잘 압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과 입장이 바뀌니 이제 더 이상 서로를 잘 안다고 할 수가 없다. 팔스타프는 얼마나 왕자님을 잘 안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쓸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나는 너를 잘 알아."라는 말할 때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말이 정말 나를 잘 알아서인지,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모호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잘 안다"는 말을 쓸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나는 너를 잘 모른다."와 "나는 너를 잘 안다." 두 말 모두 마음이 아프다. 셰익스피어 역사극의 대사를 너무 깊이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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