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울타리 치기(Enclosure Acts)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 중의 하나는 광활한 영지와 산책로에 대한 묘사이다. 작가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에서 주인공이 산책을 즐기거나 연인들이 다정하게 대화를 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 씨의 펨벌리 영지를 돌아보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 작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영지 내 공유지에서 고용된 일꾼들은 양떼를 방목하거나 풀을 베어 건초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공유지는 산업혁명의 여파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됐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인클로저(Enclosure) 운동, 즉 울타리 치기(Enclosure Acts)가 시작된다. 울타리치기는 공동으로 사용되던 경작지나 황무지를 개인 소유의 사유지로 분할하고 울타리를 치는 일련의 법적 조치를 말한다. 『이성과 감성』의 존 대시우드는 놀랜드 공유지에 울타리 치는 작업이 진행중인데 그 비용이 막대하다면서 불평한다. 물려받은 유산만해도 막대하여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그는 울타리치기를 통해 더 큰 탐욕을 드러내는 듯 하다. 울타리치기는 소작농에게는 큰 타격이지만 대시우드 씨 같은 지주한테는 매우 큰 이득이었고, 땅을 늘릴 기회를 주기도 했다. 울타리치기 사건은 18세기와 19세기 초 영국 사회의 거대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상징하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런던에서나 시골에서나 오빠 씀씀이는 분명 상당하겠지요. 그렇지만 수입도 많으시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진 않지. 그렇지만 우는 소리 할 생각은 없다. 그만하면 편히 살 만한 데다 때가 되면 더 좋아질 서라고 기대하고 있고. 노어랜드 공유지에 울타리치기가 지금 진행 중인데,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지. 그리고 요 반년 사이에 내가 땅을 좀 샀지. 이스트 킹엄 농장인데, 너도 기억할 거다. 왜 깁슨 노인이 살았던 곳 말이다. 여러 모로 탐이 나는 땅인 데다가 내 땅하고 바로 인접해 있어서 내가 사야지 누가 사겠나 하는 생각이엇어. 그걸 다른 누군가의 손에 떨어지게 방치했다면 양심이 찔렸을 것이야. 남자라면 자기의 편의를 위해선 쓸 때는 써야지. 하기는 그게 엄청난 돈을 잡아 먹긴 했어."(296)
숙녀들이 정찬 이후 거실로 물러났을 때, 이런 빈곤은 더 심각해졌다. 그래도 신사들이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 공유지의 울타리치기, 말 훈련시키기 등 어느 정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었는데, 그것이 이제 끝난 것이다. 커피가 들어올 때까지 숙녀들은 한 가지 주제에만 매달렸으니, 거의 동갑내기인 해리 대시우드와 레이디 미들턴의 둘째아들 윌리엄 중에 누구 키가 크냐는 것이었다. (308)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울타리 치기는 미미한 주변 사건 혹은 소설적 배경에 불과하나 재산 상속과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보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울타리치기를 통해 부유한 지주 계층의 재산이 더욱 커지고 공고해졌고, 이를 통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보이지 않는 긴장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클로저는 여성들에게 더욱 큰 자괴감을 안겨준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토지와 같은 재산을 상속받기 어렵고, 안정적인 결혼을 통해야만 경제적 안정을 추구해야 했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의 존 대시우드가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것은 가난한 가족(계모와 여동생등)이나 소작농에 대한 전통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저버리고 자본주의적 이익만을 쫓는 지주 계급의 탐욕을 상징한다. 즉 울타리는 '내 땅은 내 마음대로 할거야.'라는 배타적 소유권의 선언이자,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한다. 울타리가 없던 시절의 끈끈한 공동체가 울타리치기를 통해 와해되는 모습인 것이다. 울타리를 통해 만든 경계는 끈끈했던 가족간의 관계에도 긴장의 선이 생겼으며, 믿음과 신뢰, 사랑에 기반한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고 철저한 이익에 기반한 관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지주들이 그렇게 울타리치기로 돈을 벌기 위해 애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에마』의 나이틀리 씨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하게 땅을 개조하기 보다는 농장을 잘 관리하고 소작농을 챙기는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지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책임감있는 지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점은 『이성과 감성』의 존 대시우드나 『맨스필드 파크』의 러시워스와 대비되는 점이다. 개인의 부를 챙기기 보다는 소작농과 이웃들을 더 챙기려 하는 그의 따뜻한 인간애가 더욱 돋보인다.
울타리치기로 소외되고 추방된 것은 소작농들, 가난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땅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 이들은 이전의 소작농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도시로 갈 수도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이 된다. 『에마』에서 해리엇이 비커턴 양과 산책 길에 집시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집시들은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추방된 빈민의 존재를 암시한다.
해리엇은 고더드 부인 댁에서 기숙하는 학생으로 전날의 무도회에도 참석했던 비커턴 양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가 어느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길은 리치먼드 거리였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이라 안전해 보였지만, 결국 느닷없는 공포로 그들을 내몰고야 말았으니, 하이버리를 벗어나 반 마일쯤 갔을 때 갑자기 길이 꺾이더니 양편에 늘어선 느릅나무들이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면서 외진 길이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젊은 아가씨들이 그 길로 얼마간 더 들어섰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의 길가로 좀 더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집시 무리가 있는 것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망을 보던 한 아이가 그들에게 다가와서 구걸을 하자, 비커턴 양은 몹시 겁에 질려서는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대더니 해리엇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치면서 가파른 둔덕을 달려 올라갔다. 그녀는 꼭대기의 성긴 산울타리를 뚫고 온 힘을 다해 지름길을 타고 다시 하이버리로 가버렸다. 그러나 가엾은 해리엇은 뒤따라갈 수가 없었다. 무도회에서 춤을 춘 후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꽤나 고생을 했었는데, 둔덕을 올라가려고 발을 떼기 무섭게 또다시 쥐가 나는 바람에 한 발짝도 뗄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결국 그런 상태에서 더엾이 겁에 질린 채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가씨들이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떠돌이들이 다르게 행동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공격하라고 도발하는 것과 다름없어서 상대편에서 그냥 놔두고 볼 리 없었다. 순식간에 해리엇은 다부진 여자와 덩치 큰 사내애를 위시한 여섯 아이들의 습격을 받았다. 다들 소란스럽게 굴었고, 말본새가 딱히 그렇진 않았어도 표정만큼은 험악했다. 이에 한층 더 겁이 난 해리엇은 곧바로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지갑을 꺼내 1실링을 건네주며 더 달라거나, 자기를 해코지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다. 그런 후 느리게나마 걸을 힘이 나서 그 자리를 뜨려는데, 겁을 먹은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지갑에 피가 끓은 집시들이 그녀를 쫓아왔고, 아니 숫제 포위하다시피 해선 하나같이 돈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지경에 처한 그녀를 마침 프랭크 처칠이 발견한 것이었다. (497-498)
울타리는 이런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미 외에도 당시의 사회적 도덕과 구속을 위반하는 행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맨스필드 파크』 1부 10장에서 등장인물들(패니 프라이스, 마리아 버트람, 헨리 크로포드, 러시워스)이 러시워스 씨의 저택인 소더턴을 방문했을 때 벌어지는 일은 매우 유의미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숲을 걷다가 잠겨있는 철제 울타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울타리 너머 더 넓은 공원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마리아를 위해 러시워스 씨가 열쇠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간다. 러시워스 씨가 없는 사이에 마리아는 헨리 크로포드의 도움을 받아 잠긴 문을 기다리지 않고 울타리 옆 틈새를 통해 담을 넘듯 빠져나간다. 다칠지도 모르고 가운이 찢어질 지도 모른다고 패니가 그들을 경고하며 만류하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난다. 나중에 도착한 줄리아 역시 질투심에 사로잡혀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들을 쫓아간다. 마리아는 정혼자인 러시워스를 두고 다른 남자(헨리 크로포드)의 도움을 받아 금지된 구역으로 갔으니, 이 행위는 훗날 두 사람이 저지르게 될 간통과 파멸을 에고하는 강력한 복선이 된다. 이는 울타리 안쪽에 남아서 열쇠를 기다리거나 원칙을 지키려 한 패니 프라이스의 정절 및 도덕성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네, 확실히 햇살이 환하고 파크도 아주 상쾌해 보이네요. 하지만 불행히도 저 철문, 저 해자 울타리는 제게 구속과 고난의 느낌을 주네요. 그 찌르레기가 노래한 것처럼, 나갈 수가 없잖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철문쪽으로 갔다. 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열쇠를 가지러 간 러시워스 씨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무슨 일이 있어도 열쇠 없이는, 러시워스 씨의 권위와 보호 없이는 나가실 생각이 없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여기 철문 가장자리로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겠는데요. 제가 조금만 도와드리면요. 정말로 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라고 마음만 먹으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해서는 안 된다뇨! 무슨 말씀이세요! 저리 나가는 거야 제 마음이고, 그렇게 할래요. 러시워스 씨도 금방 돌아올 거잖아요.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갈 것도 아니고요."
"혹시 그리된다면 프라이스 양이 전해 주실 겁니다. 저 둔덕 근처, 그러니까 둔덕 위 참나무 숲 근처에 있을 거라고요."
패니는 잘못된 행동이라 여겨져 말릴 수밖에 없었다. "다치면 어쩌려고, 언니." 그녀는 외쳤다. "저 담장 못에 찔릴 텐데......옷이 찢어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해자에 빠질지도 모르잖아. 가지마, 언니."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이 사촌 언니는 이미 반대편으로 무사히 내려서서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패니. 하지만 나도 내 옷도 다 무사하네. 그럼 나중에 봐."
패니는 다시 혼자 남았는데, 기분이 영 좋아지지 않았다. 방금 목격한 일들이 거의 다 마음에 걸렸고, 버트럼 양의 행동에 놀라고 크로퍼드 씨한테 화가 났다. (149)
지금까지 알아본 울타리치기 사건은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의미를 더욱 증폭시켜주고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