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37. 틸니 가문의 비밀을 만들어 내는 캐서린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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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오스틴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각 소설의 주인공들이 다른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가령, 감수성이 풍부한 메리앤이 『노생거 사원』의 헨리 틸니를 만난다면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전개됐을까? 하는 상상이나, 엘리너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는 버트람 경과 어떤 대화를 자주 했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캐서린 몰런드는 고딕소설 마니아이다. 고딕 소설에 심취하여 가끔은 현실과 소설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소설적 상상으로 현실을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녀가 헨리 틸니의 초대로 노생거 사원을 방문했을 때 절정에 이른다. 캐서린은 틸니 남매의 어머니가 비밀스럽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노생거 사원 안에 숨겨진 방이나 금지된 공간, 혹은 비밀 편지 등이 있을 거라고 상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밝혀진 것은 틸니 부인은 병으로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뿐, 어떤 불가사의하고 불미스런 사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즉 노생거 사원에는 특별한 비밀이나 미스터리가 전혀 없었고, 모든 비밀은 캐서린이 읽은 고딕 소설에서 비롯된 오해였던 것이다.


틸니 가문의 비밀은 캐서린의 독서취향이 만들어 낸 허구이다. 그녀의 상상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 한번 알아보자. 캐서린이 가장 크게 왜곡하는 부분은 '평범함'을 '위험'이나 '비밀'로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생거 사원의 오래된 복도는 건물이 오래됐으니 건축학적으로 어두운 공간일 뿐인데 캐서린의 시선에서는 비극적 사건의 흔적을 숨기고 있는 음산하고 비밀스런 분위기의 장소로 바뀐다. 이는 마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공포영화를 자주 본 사람이 깜깜한 밤에 학교에 갔을 때 어두컴컴한 긴 복도를 보면서 유령이나 귀신이 나올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과 같다. 학교의 복도는 그냥 복도일 뿐인데 말이다. 캐서린은 틸니 가문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 또한 과도한 상상의 옷을 입힌다. 틸니 부인의 죽음은 단순히 병으로 인한 자연사였다. 그런데 캐서린은 그녀의 죽음을 '의문의 죽음'으로 추정하고, 그 후 틸니 장군의 말이나 행동을 범죄를 은폐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읽기 시작한다. 틸니 장군이 권위주의적이고 엄격하니, 틸니 부인은 분명히 남편의 억압적 태도의 희생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캐서린은 범죄와 무관한 사람의 성격적 단점에 '악의적 동기'를 씌워서 현실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캐서린이 만들어내는 '틸니 가문의 비밀'은 고딕 로맨스의 진부함과, 그것에 심취한 사람들의 지나친 상상력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소설적 장치이다. 제인 오스틴은 당시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증가한 독서 대중 중에서 고딕 소설만 찾아다니며 읽는 독서 대중을 비판하고 있다.


틸니 가문의 저택에서 비밀을 상상하는 캐서린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이는 고딕소설에 심취한 한 순진한 소녀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그 상상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깨지게 되고, 캐서린 자신의 고딕적 취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캐서린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독자로 하여금 주목하게 한다.


근거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저질렀던 자신의 황당한 짓을 곱씹다 보니, 짧은 시간에 무엇보다 분명해진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그 모두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발적인 망상이었다는 것, 사호한 정황 하나하나가 놀라기로 작정한 상상력 덕분에 중요해져 버렸다는 것, 그리고 사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탓에 모든 것을 한 가지 목적 쪽으로 왜곡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노생거를 알게 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었는지를 떠올렸다. 바스를 떠나기 오래전부터 무엇에 홀린 듯 열에 들떠 못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모든 것의 기원을 추격해 보면 거기서 심취했던 독서가 큰 영향을 미친 듯 했다. (263)


그런데 이 소설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가 캐서린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독자의 독서 습관이 캐서린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조명하고 있다. 소설을 읽을 때 독서는 그 안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소설 속 의미룰 구성하고 세계를 재해석하는 창조적 과정이다. 소설 등장 인물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들에서 단서들을 찾고, 이야기의 빈틈이 생기면 독자 자신의 상상으로 채우기도 하고, 자신이 읽었던 다른 소설의 내용들을 불러와서 그 소설의 이야기를 예측한다. 분명 이 일련의 과정에는 독자의 오독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은 캐서린의 고딕 소설 오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국 독서란, 독자 자신의 기대와 상상을 기반으로 읽고 있는 책에 허구적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비밀을 만들어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노생거 사원>에서 캐서린이 고딕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틸니 가문과 틸니 장군을 오해하는 일로 단순히 그녀를 조롱의 대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캐서린의 오해는 오히려 독자가 작품을 읽는 방식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것이다. 이제 독자와 캐서린은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된다. 캐서린이 만들어낸 상상의 비밀은 작품에서 독자가 찾으려 하는 허구적 비밀과 나란히 놓인다. 이 순간, 제인 오스틴은 독자와 캐서린을 동일한 위치에 세우면서 소설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풍자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


『노생거 사원』은 어떤 불가사의하고 흥미로운 비밀을 지닌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비밀을 읽어내려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독자는 허구적 상상력이 지나친 캐서린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참 순진하다고 웃으며 시작하지만, 끝에 이르면 그 조롱섞인 웃음 속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독자도 자신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텍스트를 읽어왔던 것이니, 캐서린만 조롱할게 아니다. 이제 독자 자신과 닮은 캐서린의 행위를 보면서 독서의 본질은 단순한 의미 해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창조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캐서린이 현실과 부딪히면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성장하듯이, 독서를 통해 독자 또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자각하고 성장해 간다.


제인 오스틴은 분명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를 의식했다고 본다. 독자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펼쳐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소설에서 캐서린의 상상력이 일정 역할을 하고 그녀의 탐색으로 인해 틸니 가문의 비밀 이야기가 드러나는 구조였다면, 즉 캐서린의 상상력으로 시작했던 일이 결국에는 그녀의 생각대로 미스터리를 품고 있었고, 결국에는 틸니 부인의 죽음에 틸니 장군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라면 <노생거 사원>은 새로운 차원이 소설이 됐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캐서린의 상상력이 이기는 구조의 결말을 만들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제인 오스틴은 독자의 상상력이 작가의 본래 텍스트를 크게 위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에서 의미를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독자는 텍스트를 넘어서기 보다는 텍스트에 기반한 창조행위어야 하고, 독자의 상상력과 허구로 본 텍스트를 완전히 새로 바꾸거나 독자의 창조행위가 그 위에 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본다.


움베르트 에코는 『텍스트의 역할』(The Role of the Reader)이라는 책에서 텍스트가 가정하고 요청하는 이상적인 가상의 독자를 모델 독자로 명명한다. 모델 독자는 실제 독자가 아니라 작가가 작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미리 상정한 해석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독자는 작품을 읽으면서 의미를 자유롭게 해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를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에는 일정한 해석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을 따를 수 있는 독자가 바로 모델 독자인 것이다. 에코에 따르면 모델 독자는 텍스트 내의 암시된 문화적 메시지를 해독하고, 논리적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상징과 은유 등의 문학적 장치를 해석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텍스트의 빈틈을 독자가 메꾸기도 해야 한다. 그의 관점에서 독자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이다.


제인 오스틴은 어떤 독자를 그려봤을까. 그러나 제인 오스틴은 에코의 모델 독자를 바라지는 않았다고 본다. 캐서린처럼 상상력에 기반한 독서는 허용하지만, 그 이상의 과도한 상상력과 적극적인 읽기로 본 의미를 바꾸는 독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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