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제인오스틴 소설이 칙릿 소설이라고?
칙릿 소설(Chick lit)은 주로 젊은 여성의 일상과 감정, 사랑, 커리어, 우정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소설 장르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현대 여성의 삶을 솔직하고 재밌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주로 19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까지 현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경쾌하고 가벼운 로맨스 중심 소설을 가리킨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영화는 이런 칙릿 장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어떤 이가 온라인 상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칙릿 소설의 범주에 놓고 글을 쓴 것을 보게 됐다. '제인 오스틴 소설이 칫릿 소설이라고?' 그녀의 소설을 칙릿 소설이라고 하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결코 가벼운 로맨스 장르가 아니다. 당시 사회와 계급, 결혼, 성격 등 인간관계를 심도있게 탐구한 소설인데, 단지 로맨스 내용을 포함했다고 해서 칙릿소설이라고 치부하면 제인 오스틴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다.
여성 소설을 칙릿이라고 하면 여성을 낮춰부르는 느낌이 든다. 칙릿이라는 말로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을 로맨스 소설 범주에 묶어놓고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로 규정한다. 인간관계를 심도있게 진지하게 탐구한 소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한다.
제인 오스틴 소설 『에마』를 통해 그녀의 소설이 왜 칙릿 소설이 아닌지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한번도 그녀의 소설을 칫릿의 관점에서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칙릿은 보통 주인공이 연애, 커리어, 자아 문제를 겪다가 로맨틱한 성취로 마무리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반면 『에마』는 에마 우드하우스의 오만과 오판이 낳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에마는 자신이 중매에 재능이 있다고 믿고 해리엇 스미스의 결혼 상대를 자기 멋대로 설계하고자 한다. 그 결과 해리엇의 감정과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에마의 오판이 드러나고 여러 인물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만다. 에마는 미스 베이츠의 무지를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틀리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고 주변 인물들(미스 베이츠, 미스 테일러 등)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차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에마가 자신의 잘못을 차츰 깨달아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가볍고 경박하지 않으며, 로맨스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없다.
우드하우스씨,나이틀리,프랭크 처칠,미스 베이츠 등과 있는 자리에서 에마는 수수께끼 내기 놀이를 하는데, 놀이 중간에 그녀는 미스 베이츠를 무시하는 말을 한다.
"어머! 그거 잘됐네요!" 베이츠 양이 외쳤다. "그렇다고 나도 걱정할 건 없을테니 말이에요. '정말로 지리멸렬한 이야기 세가지'라면 딱 저를 위한 거니까요. 제가 입만 열면 곧바로 지리멸렬한 이야기 세 가지가 나올 게 분명하니까요. 안 그런가요? (더 없이 선량한 표정으로 둘러보며 모두의 동의를 구했다.) 그럴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으세요?"
에마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 베이츠 양, 쉽지 않으실 거에요. 죄송합니다만, 이야기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한번에 세가지밖에 할 수 없거든요."
베이츠 양은 그녀의 예의를 가장한 태도에 속아서 곧바로 그 말뜻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깨닫고 난 후에도 화를 내진 못했다. 비록 살짝 붉어진 얼굴은 상첩다은 심정을 드러냈지만.(554)
이 상황을 지켜본 나이틀리는 에마의 무례함을 단호히 꾸짖는다. 에마가 미스 베이츠의 무지를 조롱하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에마가 자신의 잘못을 서서히 깨닫고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계기가 된다.
"에마, 이제껏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 허락해줬다기보다는 참아준 거겠지만 이번에도 그 특권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어. 당신의 잘못된 행태를 보고서 항의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야. 도대체 어쩌자고 베이츠 양에게 그렇게 모질게 군 거지? 부인 같은 성격, 나이, 처지의 사람에게 어떻게 재담이랍시고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 있느냐고! 에마, 설마 당신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어."
돌이켜 생각해본 에마는 얼굴을 붉히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웃어넘기려고 했다. (560)
보통 칙릿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반면 에마는 부유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시작하지만 그 독립성은 타인에 대한 책임을 동반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칙릿은 개인의 감정과 일상에 초점을 두지만, 『에마』는 지방 신사 계급의 질서와 관습 등을 촘촘히 풍자하고 있다. 에마가 해리엇을 상류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계급 이동에 대한 환상을 드러낸 것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주인공, 에마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그 시선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차츰 에마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되고 비판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즉 독자는 공감자가 아니라 비판자인 것이다. 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감정이입하면서 소설을 즐기는 칙릿과는 매우 상반된 것이다.
에마의 깨달음의 일련의 과정은 결코 가볍거나 유머러스하지 않다. 에마와 나이틀리 씨와 맺어지게 되는 것은 로맨틱한 운명적 사랑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오만과 잘못,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책임을 인지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인 오스틴 소설을 '칫릿'의 범주로 과소평가 하는 것은 지양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