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의 The Witches
왜 우리는 마녀 이야기를 좋아할까? 마녀 이야기는 무섭기는 하지만, 극도의 공포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용인될 정도의 적당한 무서움이다. 더군다나 마녀는 마법을 통해 무엇인가를 변신시키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변신이야기, 새롭게 창조하는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이다. 마녀는 사회의 규범이나 여성에게 요구되던 순종이나 선함 같은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는 존재이다. 금지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녀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변화해왔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마녀는 악마보다는 치유자, 점술가, 마을의 지혜로운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작게 활동하는 주술적 치유가였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미드 파울라가 쓴 <Strega Nona>에서 마녀 할머니는 주술로 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마법의 냄비를 통해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배고픈 이들에게 주기도 한다. 중세 시대에 마녀가 등장한 이유는 어떤 일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여서 누군가의 주술에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기근이나 전염병, 전쟁이 나면 불행의 원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주술사를 찾기도 했다. 마녀는 약초로 상처를 치료하기도 하고 열, 감기, 통증을 완화시켜주기도 하고, 날씨를 예측하거나 불안한 마을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와주기도 했다.
마녀가 악인으로 간주되어 집단적으로 희생된 것은 근세(15세기-17세기)에 이르러서이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되고 종교 개혁의 분위기 속에서 국가의 중앙집권 강화를 위해 마녀를 이용하게 된다. 사회적 불안을 악마와 결탁한 마녀라는 이미지에 투사하면 통치자는 사회를 쉽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당시 마녀는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한 존재이고 악마의 표식을 몸에 가지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마녀들은 비밀 집회에 참가하거나 밤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아이를 해치거나 병을 퍼트린다고 믿기도 했다. 로알드 달의 『The Witches』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그려진 마녀들이 바로 이런 존재들이다. 근대에 마녀로 몰린 사람들은 주로 노년 여성, 미혼 여성, 경제적으로 약한 여성, 혹은 마을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나타니엘 호손의『주홍글씨』에서 헤스터는 숲에서 어린 딸과 단 둘이서 살아간다. 그들이 숲이라는 자연에서 살아가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을 사람들 눈에는 마녀와 같은 존재들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가장 비극적인 것은 공동체 내의 분쟁이 마녀 만들기로 이어지는 경우이다.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명학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한 개인에게 투사시키고 그 대상을 마녀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가축이 죽으면 마을의 누군가가 저주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아이가 아프면 어떤 여자가 악마와 내통한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 마녀로 지목되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 혼자 사는 사람, 다른 사람과 갈등에 있는 사람, 기존 권력에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은 아서 밀러의 『The Crucible』이다.
『The Crucible』은 미국 매사추세추 주의 세일럼 마녀 재판(1692)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동체의 두려움, 갈등, 권력 투쟁이 어떻게 마녀를 만들어내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다. 목사 패리스의 딸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숲에서 춤추던 소녀들이 마녀 행위를 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사실 이 소녀들은 단지 숲에서 어울려 논 것 뿐이었다. 패리스의 조카 애비게일 윌리엄스는 자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악마가 자신들을 유혹했다"면서 무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공동체는 공포에 사로잡히고 고발은 순식간에 번지게 된다. 애비게일은 과거 연인 사이였던 존 프록터와 그의 아내 엘리자세스 사이를 깨뜨리고 싶어하는데, 계획적으로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고발한다. 프록터 부부는 재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제 마을 사람들 간의 오래된 원한과 갈등이 모두 마녀 고발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존 프록터는 애비게일의 거짓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나가지만, 재판관들은 이미 고백은 구원이고 부인하는 것은 죄라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어서 프록터의 증언은 의심을 받게 된다. 소녀들은 집단적으로 히스테릭한 연기를 하며 재판을 혼란에 빠트린다. 결국 프록터는 자신 또한 마녀로 몰리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인류 역사에서 마녀 이야기와 마녀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 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수업을 디자인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마녀에 빠지게 되는 이유들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이 읽은 책 속의 마녀들은 어떤 존재였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우 흥미로운 수업이었다. 그리고 로알드 달의 『The Witches』를 읽어보면서 로알드 달은 마녀를 어떤 식으로 묘사했는지 살펴보았다. 중학생들에게 사람이나 대상을 묘사하는 형용사 익히기는 필요한 수업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로알드 달은 마녀를 묘사할 때 눈에 확 들어오는 형용사, 감각적 표현, 과장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마녀는 겉으로는 ordinary women처럼 보이지만 실제 모습은 매우 기괴하고 섬뜩한(disgusting, creepy, grotesue) 존재이다. 로알드 달이 사용한, 마녀의 머리를 묘사하는 형용사들은 bald, wrinkly, scabby, itchy, patchy 등이고, 손과 손가락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은 claw-like, sharp, bony, twisted 등이다. 발 묘사 형용사들은 flat, smooth, odd-looking, strange-shaped 등이고, 눈 묘사 형용사들은 peircing, glittery, cold, mysterious, cat-like 등이고, 코를 묘사하는 형용사들은 large, sharp-pointing, sniffing, sensitive 등이다. 피부를 묘사하는 형용사는 blue-ish, bumpy, scaly, dry, spotty 등이었다. 그런데 이 마녀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으로 위장되어 있는데 그 위장된 모습을 표현하는 형용사들은 ordinary-looking, respectable, well-dressed, perfumed, ladylike 등이다.
이들 형용사들을 찾아보면서 마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 만으로도 학생들의 흥미는 높아졌고, 수업에 대한 참여 또한 매우 적극적인 모습이 되었다. 새로 만든 수업 디자인은 가장 마녀스러운 존재를 표현하는 형용사들(로알드 달이 쓰지 않은 형용사들)과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으로 위장되었을 때를 묘사하는 형용사들을 더 써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 형용사 찾기는 단순한 어휘수업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설명한 마녀는 어떤 존재인지, 왜 사람들은 마녀 이야기에 끌리는지, 역사적으로 마녀로 규정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는지에 대한 사회적, 시대적 맥락을 알아보는 활동에까지 이르게 했다. 교사로서 바로 의도한 바였다.
그런데 오늘 수업의 포인트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동안 늘 해왔던 수업에서 한가지만 바꿔보기로 했다. 소설 결말에 대한 토론으로 방향을 바꿔보기로 말이다. 『The Witches』 끝부분에 마녀들은 퇴치했지만 소년은 끝까지 생쥐로 남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부분을 슬프다고 말하는 학생들, 그래도 재미있다고 하는 학생들, 그 반응도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익숙한 결말은 마법이 해결되면 정상 복귀되는 그런 이야기 구조이다. 그런데 왜 로알드 달은 소년을 끝까지 생쥐로 남게 했을까?
The two of us remained silent in front of the fire for a long time after that, thinking about these wonderful things.
"My darling,' she said at last, 'are you sure you don't mind being a mouse for the rest of your life?'
'I don't mind at all.' I said. 'It doesn't matter who you are or what you look like so long as somebody loves you.'(190)
흔히 익숙한 이야기라면 손자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달은 왜 이런 결말 구조를 만들었을까? 로알드 달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강하고 현명하며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만약에 마법이 전부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메시지가 약해질 수 있다. 소년은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게 됐는데, 작아도 강할 수 있고, 외모나 형태가 바뀌어도 가족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소년은 생쥐가 되어 수명이 짧아졌음을 알고 할머니도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년은 할머니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죽게 되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A mouse-person will almost certainly live for three times as long as an ordinary mouse,' my grandmother said. 'About nine years.'
'Good!' I cried. 'That's great! It's the best news I've ever had!'
'Why do you say that?' she asked, surprised.
'Because I would never want to live longer than you,'
I said. 'I couldn't stand being looked after by anybody else.'
이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해 본다. 변화가 되도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다.